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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518

외도 놀이 조각공원(경남.거제) 이곳 조각공원은 놀이 조각공원으로 우리들의 할아버지.아버지들이 즐겨하던 전통놀이를 원광대학교 김광재 교수가 이란 대리석으로 재미있게 형상화한 작품들이 잔디위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2015. 12. 18.
외도(外島) 경남.거제 이젠 유명한 여행지로 자리잡은 외도를 오랜만에 댜녀 왔습니다. 몇번을 찿은 외도지만 올때마다 30년을 넘게 바위섬을 지상의 낙원으로 탈바꿈시킨 역사의 주인공 이창호.최호숙 부부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지금은 주인공 이창호님은 2003년도 3월1일자로 고인이 되어서 안타깝습니다. 이곳은 거제시에서 약 4km 떨어진 거리로 거제 8경에 속하며 외도는 겉으로 보기엔 하나의 섬 같지만 실제로는 동도와 서도 두개로 이루어진 섬으로 사실 외도보타니아로 불리어지는 섬은 서도로 이곳이 33평방키로미터의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 곳 입니다. 이 서도엔 늘푸른 840 여종의 아열대 식물과.조각공원.유럽풍정원등 이국적 자연풍경이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해상공원으로 아름다운 환상의 섬으로 동양의 하와이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2015. 12. 18.
한티재(한국의 아름다운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한티재는 한티재에 있는 한티 휴게소를 기점으로 경북 칠곡군 동명면 방향으로 5km 경북 군위군 부계면 방향으로 5km 대구 팔공산 자락 10km 거리가 아름다운 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아래 사진은 한티길 구간의 12월의 겨울 풍경 입니다. 2015. 12. 17.
거제 해금강(巨濟 海金剛)(경남.거제) 지난 12월 7일날 경북농민사관학교 고품질감생산과정 졸업 여행으로 오랜만에 거제 해금강을 다녀 왔습니다.파도가 심해 십자동굴까진 접근을 못하고 섬을 한바퀴돌고 외도를 향했습니다. * 거제 해금강은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어 거제 해금강으로 등재 되었으며 또한 이곳은 1968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 해발116m.면적은 0.12평방키로. 아열대 식물이 30종이 분포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섬의 원명은 갈도(葛島)로 칡뿌리가 뻗어내린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거제 8경으로도 들어 있고 수억년 파도와 바람에 씻긴 형상이 갖가지 모습을 연출하여.사자바위.미륵바위.촛대바위.돛대바위. 신랑바위.신부바위.해골바위 등으로 둘러싸인 해금강은 서복이 동남동녀 삼천명이 함계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 장생초를 구하러 왔.. 2015. 12. 17.
시인 정지용(鄭芝溶)생가(충북.옥천)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우리의 언어를 시적 형상화하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추앙 받고있는 시인 정지용 생가는 충북.옥천군.옥천읍.향수길 56에 위치 하고 있으며 육영수 생가 에서는 0.8km 거리에 있는 생가는 정면3칸.측면2칸이며 퇴간 구조이다.이 외에 돌담과. 사립문.초가.우물.장독대 등이 있으며 내부 시설에는 문학교실과 영상실.시 낭송실.문학전시실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에서는 문학체험(시.영상시화.향수영상.시어검색.시낭송)을 할수 있습니다. 마당엔 정지용 동상이 우뚝서서 지키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정지용 시인의 주요 작품과 시집으론 시집: 정지용시집.백록담 등 산문집: 문학독본.산문 등 시: 향수.유리.. 2015. 12. 16.
석연지(石蓮池)보은 법주사 보은 법주사 경내에 있는 석련지는 국보 6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성덕왕 19년(720)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 조형물로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 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함. 2015. 12. 14.
석조희견보살입상(石造喜見菩薩立像)법주사 보살상은 보물 제1417호로 전체 높이가 213cm 규모로 크게 신체.공양물.대좌의 3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자연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가로 네모 반듯한 모양의 받침돌을 그위로 중심부에 해당하는 몸통을 세워 고정시켜 얼굴 부분은 마열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 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 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 되었다. 향로를 받쳐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 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 옷의 표현 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 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시기인 72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 2015. 12. 14.
법주사 원통보전(圓通寶殿)충북.보은 보물 제916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사모지붕건물이다. 공포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으로 처마가 깊게 숙여서 건물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이 보인다.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마루가 한곳에 모여 있으며, 그 정상에 석조로 만든 절병통이 놓여 있다. 이것은 금산사대장전(金山寺大藏殿, 보물 제827호)에서 볼 수 있었던 석조물로 그 형상이 아주 고격(古格)이다. 또 정방형(正方形)이지만 정면 3칸이 측면 3칸보다 약 2자 정도 큰데, 이것은 정확한 정방형일 때 일어나는 착시 현상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건물 내부에는 4개의 기둥이 네 귀퉁이마다 서 있어 이것을 4천주(天柱)라고도 부른다. 이는 추녀 뒷몸을 결구하기 위한 것인데, 뒤편의 두 기둥을 이용하여 후불벽을 만들었다. 후불벽.. 2015. 12. 14.
법주사대웅보전(法住寺大雄寶殿)충북.보은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 헤공왕12년(776)에 진표율사가 고쳐 지었으나 임진왜란시 불타 버린후 인조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 402.80평방미터. 높이가 약19미터에 으르는 대규모 건물로 무량사 극락전.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건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5.5미터 허리둘레 3.9미터 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 좌상이 안치되어있다. * 법주사 대웅보전은 보물제 915호지정 *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대웅전을 격을 높여 부를때 대웅보전 이라하며 * 대웅은 고대 인도의 "마하바라" 를 한역한.. 2015. 12. 14.
통일호국 금동 미륵대불(속리산.법주사) 이 금동 미륵대불은 충북.보은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 있으며 신라 혜공왕12년(서기776년)에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그때부터 모신 미륵 부처님을 조선조 고종9년(서기1872년) 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 마련 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 일제 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 하던중 80% 공정 상태에서 6.25동란으로 중단. 1963년에 박추담 주지스님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과 이영자 여사의 시주로 복원 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 미륵 부처님이 완성 회향 되었다. 1986년 류월탄 주.. 2015. 12. 13.
속리산 법주사(충북.보은) 일주문(호서제일가람) 법주사 입구 5리숲 속리산 법주사 부도전 금강문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황문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곳으로 금강석과 같은 깨어지지 않는 마음을 내어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는 서원이 이루어 지도록 스스로 다짐 하는곳이다. 대개 밀적금강역사(훔금강.수비)와 사자를 타고있는 문수동자.나라연금강(아금강.공격) 과 코끼리를 타고있는 보현동자가 그려져있다. 천왕문 사찰의 삼문 가운데 두번째 문으로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에 있으며 네 방위를 수호하는 지국천왕(동방.칼).증장천왕(남방.용과여의주).광목천왕(서방.비파) 다문천왕(북방.탑)을 봉안. 사천왕은 인도 전래의 신이었으나 불교에서 수용 제석천왕을 섬기며 불법을 수호. 다문천왕(북방) 증장천왕(남방) 지국천왕(동.. 2015. 12. 12.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충북.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국보 제55호로 신라 진흥왕14년(553 )에 건립 되었으며 그후 임진왜란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4년(1626 )에 다시 지어졌는데 조선의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주관했으며 이후 1968년에 완전 해체 복원 공사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팔상전은 5층 목조탑 건축으로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된 중요한 건축물로 내부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있어 팔상전이라 부르게 된듯 하다고하며 1층과 2층은 정면5칸 측면5칸 3층과 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있다. 처마를 장식하는 공포양식은 1층부터 4층 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 식이고 5층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식 건물. *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대기.. 2015.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