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국립공원에는/가야산에 문화는12 해인사 성보박물관 큰 사찰마다 대부분 성보박물관을 보유 하고 있는데 이곳 해인사도 옛 해인초등학교 자리에 해인성보박물관을 건립하여 놓았다. 성보박물관은 1995년2월11일날 건립부지를 선정하고 1995년 5월13일에 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1997년도에 건축면적 3578평방미터(1082평)에 지하1층 지상2층 건물 철근콘크리트형 공사를 당시 제22대 검광 주지스님이 시작하여 2000년도 세민 주지스님때 성보박물관을 완공하여 2002년도 7월5일날 개관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있다. 박물관주소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742~17 박물관에는 소장유물로 국가지정문화재는 해인사 목조건칠희랑대사좌상 (보물999호) 해인사 홍치4년명 동종 (보물1253호) 해인사 영상회상도 (보물1273호) 해인사 감로왕도 (보물1.. 2018. 4. 15. 합천치인리마애불입상(陜川緻仁里磨崖佛立像) 1200년만에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45일간만 공개 되었던 치인리 마애불입상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4-21(치인리 산1-1) 위치 하고있다. 1963년 1월21일자로 보물 222호로 지정 되었다. 이곳은 가야산 약 1000 m중턱에 소재하며 현재도 이곳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 사전에 보면은 이 마애불을 이렇게 묘사 하고있다 소발의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읔 육계가 얹혀있고 얼굴은 풍만한 편으로 약간 치켜 올라간 눈고리 윤곽이 뚜렷한 인중과 입 등 세부 표현이 약간 위쪽에 치우쳐 있어 이마가 좁고 살쪄 보이며 근엄한 인상으로 넓고 각이진 어깨에는 두꺼운 통견의 법의를 걸쳤는데 왼쪽 어깨위에는 마무리되어 매듭진 고리 장식이 남아있고 가슴위로는 승각기의 띠 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은 가슴 앞.. 2017. 7. 24. 백운리 마애불입상(磨崖佛立像)문화재자료66호 백운리 마애불입상은 현재는 입산이 금지된 비법정 탐방로에 위치 하고 있으며 이곳은 해발 950m 지점 백운대 아래쪽에 높이 2m.최대 폭 129cm아래 위로 긴 타원형 석재의 한 단면을 다듬어 조성하여 마애불 위로 자연석이 지붕처럼 덮여 있는 것이 특이하며 조각하는 부분이 주위 면보다 튀어나오게 조각하는 양각기법을 썼으며 불상의 높이는 160cm가량 두발을 가지런하게 선 등족립(登足立)이다. 조성된 시기를신라 하대인 9세기 무렵으로 추정. 마애불의 수인(手印)은 부처님의 손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백운리 마애불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 與願印)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이 다소 처진 편이며 시무외 여원인은 "나를 믿으라 두려움이 없어지고 너의 소원을 이뤄 주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상생의땅 가야산) 2016. 3. 9. 팔만대장경판(국보32호)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부처님의 모든 말씀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해인사에 봉안된 대장경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1350장에 달하고 8만사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고려대장경은 거란과 몽고의 침입에 항거하여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여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고려인의 민족적 열망으로 현종2년 1011년부터 착수하여 240여 년 동안 완성한 세계 최초(最初).최고(最古).최고(最高) 목판본으로 규모와 내용 형식에서 당대 동아시아 문명의 결정체로 평가 되고있다.고려대장경은 고종23~38년(1236~1251)에 걸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판각 하기에 이르러 16년간 81.350판(양면조각) 경.. 2016. 2. 19. 팔만대장경전.수다라장(修多羅藏)법보전(국보52호) 해인사 대적광전 뒷편 위에는 장경판전(藏經版殿)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가파른 돌 계단을 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출입문을 들어 서야만 국보로 지정된 장경판전 건물을 볼수 있습니다. 돌계단 들머리에 보면은 옛 돌 표지석이 한자로 국보 제52호 팔만대장경판전.그리고 국보 제 32호 팔만대장경판 이란 표지석 2개가 나란이 서 있습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이 형국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것을 나타 낸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장경판전은 처음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해가 1398년임을 미루어볼 때지금의 건물은 조선초 무렵인 1488년쯤에 세워졌으리라고 여겨 지는데 여러 차례에 걸친 부분적인 증.. 2016. 2. 19. 월광사지삼층석탑(月光寺址三層石塔)보물129호 月光寺址三層石塔(월광사지삼층석탑)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월광사 터에 있음. 보물 제129호. 월광사터에 동서로 세워진 쌍탑. 전체적으로 볼 때 두 탑이 거의 비슷하지만, 동탑은 전체의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구성에서 다소 많은 돌을 사용하였고, 서탑은 쓰러져 부서진 것을 최근에 세워 파손된 흔적이 보임. 통일신라의 탑이긴 하나, 서로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각 부분의 구성방법이나 양식이 약간 다름. 2016. 2. 17. 합천반야사지 원경왕사비(陜川般若寺址 元景王師碑)보물128호 이 비석은 고려시대의 고승 원경왕사(1045~1114)를 기리고자 인종3년(1425)에 세운 비다.가야면 야천리 반야사 터에 있던것을 1961년 해인사 경내로 옮겨왔다. 거북받침돌.비몸.지붕돌을 갖추었고 각 부분이 얇은것이 특징이며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숙종1년(1104)에 승통이 되엇다. 예종때 왕사가 된후 귀법사에 머물다 예종14년(1119)에 70세로 입적하자 왕은 원경 시호 내려줌. 이 비는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 탑동 마을에서 1968년 현 위치로 옮겨 왔고 비의높이 2.3m. 너비1.2m. 재료는 화강석으로 비문은 김부일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 고려인종3년(1125)에 만들어진 이비는 조각 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들 등에서 고려 중기 특.. 2016. 2. 13. 가야산문화재.해인사.정중삼층석탑(庭中三層石塔) 탑은 부처님의 사리.경전.불상등을 모시고 예경 하는곳으로 사원의 가장 중심 되는곳에 세워지고 탑을 돌면서 예배의식을 행합니다. 해인사 정중삼층석탑은 불상을 모신 탑으로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으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바닥돌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이마를 땅에대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하는 정례석(頂禮石)입니다. 2016. 2. 10. 가야산문화재(해인사.석등) 해인사 석등(石燈)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등은 부처님의 광명을 상징합니다. 해인사 석등은 우아한 조각 수법과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비로탑과 동시에 조선된 것으로 8각으로된 화사석에는 사면으로 창이 나있고 나머지 사면이 사천왕상이 조각 되어 있습니다. 2016. 2. 9. 가야산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보물264호 이 석조여래입상은 가야산 18경인 봉천대 가기전에 탐방로에서 오른쪽 약50 여m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상왕봉 까지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발품을 팔지 않으면 갈수 없는 곳 입니다. 보물 제264호인 이 석조여래입상은 얼굴 신체의 양강 그리고 옷 주름에서 통일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이 엿 보이기는 하나 균형을 잃은 경직된자세 평면적이고 소극적인 조각수법등 형식화 경향이 현저한 여래상이다. 제작시기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2016. 1. 4. 사명대사 석장비(四溟大師 石藏碑)가야산.해인사(보물1301호) 이 비석은 임진왜란때 승장으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1612년에 건립 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다시 복원 한 것으로 이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석학 허균이 지었으며 광해군 2년에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익호(謚號)를 내리고 이곳 홍제암에 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 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2015. 10. 3. 해인사묘길상탑(海印寺吉祥塔)경남.합천(보물1242호) 이 길상탑은 경남 합천 해인사 일주문 가기전 약 50 여m 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통 일반적인 탑은 일주문 안 사찰 경내에 서있고 또한 층수에 따라 구별하여 보통 명사로 불리어지고 하는데 이 탑은 일주문 밖에 있고 탑의 명칭도 고유명사로 칭하고 있는점이 좀 특별함을 알수 있습니다. 이 탑의 첫번째 지석 앞면에는 해인사묘길 상탑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고운 최치원이 지었습니다. 내용에는 진성여왕9년(895) 7월에 전란에서 사망한 원혼들의 명복을 빌기위해 삼층석탑응 세운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석뒷면에는 운양대길상탑기(雲陽大吉祥塔記)가 기록. 내용은 탑의높이.소요자재와 경비 공사관련 인물들의 설명이 기록되어 이 탑은 보물 124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15. 6.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