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기도37 봉선사 연꽃축제(경기.남양주) 2024.7.27봉선사를 순례하는 날 봉선사 연꽃 축제가 열리고 있어봉선사 연지(연못)를 들러 보았다. 매년 7월 중순경 개최한다고 하는데올해는 당초 7월19일에서 7월 21일까지 개최 계획에서 7월 26일에서 7월 28일로연기를 하게 되어 연꽃 축제 광경을 구경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올해로 (2024년) 22회째 행사라 한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2024. 8. 7.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인천.동구) 사람이 모여사는 도시마다 크고 작은 달동네들의 흔적이 가난했던 시절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음에 인천의 달동네의 추억이 있는 수도국산달동네 박물관을 가본다. 달동네 하면 여러 가지의 단어들을 생각한다. 빈민가. 쪽방촌. 판자촌. 산동네. 천막촌 등 여기에 공통적인 건 가난이 아닐까. 그래서 달동네란 빈민촌을 가리키는 한국어의 어휘라 한다. 도시 외곽의 산등성이나 산비탈등 비교적 높은 지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였기에 동네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지만 고지대라는 지리적 환경은 생활하기는 불편했지만 한편으론 전망이 좋고 사생활이 보호되며 침수가 안 되는 점도 위안을 삼았으리라 생각된다. 달동네를 영어로는 shanty town이라 하고 영어권에서는 빈민가를 뜻하는 슬.. 2023. 2. 9. 강화전쟁박물관(인천.강화) 강화는 지리적으로 경기만의 중심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문화의 중요한 이동통로이자 수차례에 걸친 외세의 침략을 극복하여 뛰어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다. 또한 강화는 삼국시대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한강 하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 이다. 강화전쟁박물관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국방의 요충지로 역사의 고비 때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강화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 보존. 수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선사. 삼국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시된 전쟁의 흔적을 관람해 본다. *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 길 18 2022. 12. 21. 외규장각(外奎章閣)인천.강화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에 옮겼던 곳 고려궁지에는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을 볼 수 있다.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설립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를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왕실외곽서고로 1782년 설립(정조 6) 규장각이 왕이 쓴 글과 왕실관련 도서를 보관하던 왕립도서관이었다면 외규장각은 부속 도서관이다. 병인양요(1866) 이전 까지는 외규장각 도서가 1007종 약 6000권을 보유하였다고 한다. * 의궤란 -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책들. * 조선왕실 의궤는 200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었으며 제작시기는 1392~1910년으로 현재 소장 관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외.. 2022. 11. 18. 강화 고인돌(인천.강화)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우산을 쓰지 않으면 옷이 젖을 만큼 온다. 카메라 앵글에 빗방울이 튀어 촬영 하기에는 아주 악조건이지만 소나기가 내리는 것보단 그래도 위로가 된다. 15여 년 전에 답사를 했던 이곳은 우리나라 고인돌중에 가장 대표적이며 크기도 가장 큰 고유번호 18번 화강암 북방식 고인돌이다. 15년 전보다 주변이 많이 변했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조금만 유명세를 띄거나 지명도가 있으면 경쟁적으로 시설이 들어서고 여러 각도로 개발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강화는 대다수 탁자식 고인돌인데 이곳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 중 비 지정된 128번 고인돌을 제외하곤 9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지만 현재는 4기만 남아 있다. 선사 청동기 시대에 이루어졌으며 면적은 69,293평방 미터에 달한다. 1.. 2022. 11. 18. 성공회강화성당(인천.강화)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옥 형태의 강화 성공회 성당 정면에는 한자로 천주성전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 건물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111호(1981.7.15)에서 2001년 1월 4일 자로 사적 424호로 변경 승격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코프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 시작 이 되었으며 건물은 1900년(광무 4) 코프(Corfe.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가 이루어진 것은 주교 축성이 있은지 7년 뒤 1986년 6월 13일 강화도에서 이뤄지며 이런 인연으로 강화에 가장 먼저 성당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하여 불교 사찰의 구릉지 가람과 비슷하게 토지를 조성하여 앞마당에 보리수와 동쪽 방향에는 초대 사제들의 묘비를 세워 놓았다. .. 2022. 11. 17. 고려궁지(인천.강화) 고려궁지는 1232년도 고려의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야 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1964년 6월 10일 자로 사적 133호로 지정이 되고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면적이 7534평방미터로 현재 강화유수부 동헌. 유수부 이방청. 강화동종각이 있으며 옛 역사를 말해주는 400년 이상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고려궁지의 터줏대감이다. 2022. 11. 7. 인천근대문화거리(인천.중구)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 길 일원에는 인천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근대 문물과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 연구하여 전시하여 놓은 각종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인천을 통해 처음 도입되었거나 인천에서 태동한 근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함께 당시의 건축물도 과거로 돌아가게 한다. 2022.10.8 인천 개항박물관 2022. 11. 7. 인천차이나타운(인천.중구) 1883년 대한민국 인천항이 개항되며 1884년 이 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治外法權)(extraterrit0 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며 인천 차이나타운이 생겨 났다고 한다. 과거에는 물건을 파는 상점이 주를 이루었는데 현재는 거의 중국 음식점이다. 현재 이 거리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로 초기 전착 민들의 2세나 3세들로 1세 때의 전통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차이나타운을 고수.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말 임오군란 때 산둥성에 주둔 중이던 오장경(吳長慶) 수군이 파병되며 4000여 명의 군사와 40여 명의 상인이 들어오며 산둥 출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천에는 화교(華僑)가 2000여 명 정도로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는 약 120 가구에 500여 명 정도라 한다. 주소:.. 2022. 11. 7. 인천자유공원(인천.중구) 인천 지역 여행을 애지리의 리가 주선. 2박 3일 인천 송도에 호텔을 예약하여 자가 차량으로 접선장소 인천 자유공원에서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천 하면 맥아더 장군 동상이 교과서에 실려 우리 세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보지는 안 했지만 인천의 자유공원을 기억한다. 우리 역시 이곳은 처음이다. 주변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리가 도착할 때까지 인천 자유공원을 기웃거려 본다. 인천항 개항 5년 만에 만들어진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 한다. 이곳 응봉산 자유공원은 최초로는 1883년 조성 이후 1941년 서공원. 1945년 해방 후 만국공원으로 불려지다 1957년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지며 자유공원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자유공원은 인천의 상징이지만 또한 민족상잔 뼈아픈 과거.. 2022. 11. 1. 융릉(隆陵)경기.화성 일반적으로 이곳의 릉은 건릉. 융릉을 따로 부르지 않고 융. 건릉이라 부른다. 두 릉이 가까이 있으며 부자 지간 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정조 임금의 애틋한 효심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 스럽게 그렇게 불리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한다. 사도세자(思悼世子)로 많이 알려져있는 장조(壯祖) 1735~1762와 우리들에게는 혜경궁(惠慶宮) 1735~1815 으로 잘 알려진 헌경 황후 홍 씨(獻敬皇后 洪氏)가 모셔진 융릉은 아들 정조 임금의 묘와 지척에 있다.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 쌓여있는 이곳은 지역민들의 좋은 역사를 생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2022. 10. 23. 건릉(健陵) 경기.화성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祖.(1752~1800) 재위(1776~1800)와 효의 황후(1753~1821)의 능으로 정조는 아버지 장조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 하였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 당파와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을 통해 인재를 등용. 규장각을 두어 학문 진흥에 힘썼고 장용영을 설치하여 군사력을 강화. 수원 화성을 건축한 임금으로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하였다가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황제로 추존되며 묘호를 정조로 바꾸었다. 묘의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주소: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 길 21 신성한 곳을 알리는 홍살문 건릉(정조 임금) 제향을 지내는 건물 정자각 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힌다는 장명 등 오른편 무석인. 문석인 왼편 무석인. 문석인 정자각 건. 융릉.. 2022. 10. 22.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