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리박물관에는118 동력탈곡기(動力脫穀機) 농경문화에서 탈곡기는 매우 중요한 농기구로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음을 알수있다. 기계공학대사전에는 각종 곡물의 줄기에서 그 곡립이나 이삭을 이탈 시키는 기계라 정의하고 있다. 아래 사진의 탈곡기는 콤바인이 공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던 동력탈곡기(power thresh)로 동력은 경운기에 넓은 벨트를 걸어 회전을 시켰다. 이 탈곡기는 마을 리장집에 콤바인을 사용하며 창고 구석에 오랫동안 처박혀 있던걸 애지리박물관으로 옮겨왔다. 그 덕분에 탈곡기의 역사를 알아보자. * 탈곡의 기원은 농경생활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자연물(돌.나무)을 이용하여 탈곡을 하다 * 옛날에는 두개의 막대기 한 끝을 묶고 집게 모양으로 곡물 이삭을 끼워 훑어내는 훑이를 사용하였고 막대기 대신 수수대를 접어 이용도 하였다.. 2020. 2. 29. 1960년대 학생생활통지표 1960년대 초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던 초등학교 학생생활통지표로 그때 그 시절에는 통신표라 불리어졌는걸로 기억된다.1961년도까지 아마 단기를 사용하다 1962년도에는 서기로 인쇄되어 통지표가 발행된걸 알수있다. 이 생활통지표의 주인공 한 분은 1955년 생이니 지금 만 65세의 나이고 또 한 분은 1953년 생이니 만 67세의 나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2020. 2. 10.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담배 표지 조선총독부 시절 조선총독부 전매국에서 생산 판매했던 희연(囍煙)이란 담배포장지 표지로 당시의 가격은 10전 이었으며 바닥 배경 그림은 꽃 그림인데 무궁화는 아닌것 같다. 2020. 2. 9. 옛 국민학교 임명장 단기4294년도에 국민학교 1학년 부급장 임명장으로 이 당시에는 상장이나 임명장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 하였으며 단기 4294년이면 서기로 1961년도로 지금부터 59년전의 임명장이다. 상단 양 모서리에는 올리브 가지 그림인지 그려 넣어 멋을 부렸고 상단 중앙에는 독수리 모양의 새도 그려져 있다. 아직도 학교장 직인은 선명하다. 2020.1.9 2020. 2. 9. 1956년도 서울신문에는 대통령 선거를 대선이라 하고 국회의원 선거를 우리는 보통 총선이라 부르는데 곧 총선인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천태만상 이다. 옛 자료들을 정리하다 정치권과 관련된 재미나는 글이 옛신문에 게재되어 올려본다. "신판(新版)못살겠다 타령(打鈴)" 전북이리(裡里. 지금은 익산)서 대유행(大流行)" *1) 금력이 욕심나서 못살겠단 말이요. 권력이 탐나서 못살겠단 말이요. 지난날 잘산사람 그대들이 였지요. 권세로 백성울린 그대들이 였지요. 2) 왜정이 그리워 못살겠단 말이요. 군정이 애석해 못살겠단 말이요. 일제때 지주는 그대들이 였지요. 군정때 대관도 그대들이 였지요. 3) 이나라 섰으니 못살겠단 말이요. 오랑캐 부셨으니 못살겠단 말이요. 적성감위 몰아내니 못살겠단 말이요. 반공청년 석방할때 그대들이 욕.. 2020. 1. 14. 1940 년대 고지서(일제강점기) 1940년도는 아직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주권을 빼앗겼던 시절. 미곡통제조합(米穀統制組合)에서 발행한 납입고지서에는 납부일자가 소화14년 12월20일 까지 되어 있으며 일본어도 표기되어 일제강점기임을 알수있다. 발급한 기관이 통제조합이라 어찌 명칭부터 권위적이고 강한자와 약한자.갑과을의 논리가 묻어난다. 통제(統制)의 한잣말은 거느릴"통"에 억제할"제"자로 명칭부터가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 선조님들은 이런 세월을 36년간 버텨야 했으니? 2020. 1. 14. 1939 년도(81년전) 청첩장 지금으로부터 81년전 서기 1939년(소화13년)에 사용된 청첩장으로 그 당시에 이런 인쇄체 청첩장을 발행하여 사용 하였다는 것은 상류층 신분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본다. 주례 이름도 명기되어 있고 결혼식장은 고등학교 강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것은 당시로서는 권력(權力)과 부(富)를 다 가진자가 아닐까? 1939년도에는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되는 해였다. 2020.1.10 2020. 1. 11. 일제강점기 금원차용증(金員借用證) 일제강점기 시절 부동산을 저당하고 돈을 차용할 때 작성했던 차용증서로 당시에는 금원차용증이라 되어있으며 저당물건 목록도 별지에 기재되어 첨부 되었다. 아마 앞의 변제증서 당사자와 동일인 인거 같은데 차용증서 일자도 소화8년(서기1934년)이다. 같은해에 빌려 변제하고 변제증서와 같이 보관하였던 서류인거 같다. 변제증서에 첨부되었던 수입인지 금액은 3전 이었는데 차용증서 인지대는 10전 짜리다. 2020.1.10 2020. 1. 11. 일제강점기 변제증서(해지증서) 일제강점기 시절 저당을 설정 돈을 차용한후 상환하고 저당권 설정을 해지한 변제증서(辨濟證書) 이다 .요즈음에는 해지증서라 불려 지는데 아래의 변제증서 서류는 소화8년도니까 서기로는 1934년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86년전 서류다.상단에 부착된 수입인지도 일본정부 발행이며 삼전이라 되어있다. 왼쪽 말미에는 사법대서인 날인도 보인다. 나라를 빼앗겼던 서러움은 생활 전반 곳곳에서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2020.110 2020. 1. 11. 일제강점기 인감증명서 아는 지인 선배가 고문서 같다고 애지리 박물관 소장물로 어떨지싶어 가져왔다고하여 정리를 해보니 일제 강점기 시절 발급한 인감증명서로 그 당시엔 인감증명원(印鑑證明願) 이라 하여 A4 용지의 두배 정도의 크기로 종이 재질은 반지이며 인감이 날인된 부분은 별지로 날인하여 첨부되어 있으며 간인도 찍혀있다. 인감이 날인된 곳에는 당사자의 생년월일 날짜가 명치(明治)23년으로 되어 있으며 인감 양식에는 발급년이 소화(昭和)14년으로 되어있어 서기를 사용하지 않고 철저히 일본의 책력을 사용 하였음을 알수있다. 인감상 주인공은 인감증명 발행 당시 명치 23년이면 서기로 1891년이 되어 당시 나이가 49세 였으며 인감증명서를 발행한 일자는 1940년(소화14년) 12월 6일이다. 아래의 인감증명원은 80년 전에 일제.. 2020. 1. 11. 앉은뱅이책상 앉은뱅이책상 또는 좌식책상(坐式冊床) 이라 불리어졌던 책상이다. 1960년 전후에 그래도 중학생 정도는 되어야 얻어 걸릴수 있었던 시절. 이름도 좌식책상보다 앉은뱅이책상이 왠지 정겹게 다가온다. 아래의 책상은 어느 사찰 조그만 암자에서 스님이 오랜 세월 사용하던 것으로 애완용으로 키우고있는 고양이들이 책상에다 오줌을 너무 많이싸서 냄새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하여 얻어와 고압호스로 씻어 햇볕에 말려 사포로 다 닦아내고 오일스덴으로 여러번 칠을하여 애지리 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 크기는 가로(85cm) 세로(54cm) 높이(32cm) 2019. 8. 3. 경 대(鏡 臺) 경대(鏡臺)를 어학 사전을 찿아보니 "거울을 달아 세운 가구" 로 되어있다. 영문으로는 a.dressing stand 라 표기된다. 아래의 경대는 100살 가까이 되시는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주변분이 집 정리를 해 주면서 아까워서 애지리가 생각이나서 연락이와서 애지리 박물관까지 오게된 경대다. 사전에는 경대를 몸을 단장하고 치장 하는데 필요한 화장품.화장도구.빗.비녀 등 장신구를 보관하던 소형의 목가구로 상자형태의 경렴(鏡殮)에서 유래 조선후기의 유리 거울이 유입되면서 빗접위에 거울을 부착 경대 형태로 발전 되었다고 한다. 서유구(徐有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와 섬용지(贍用志)에 조선시대 경대의 기능에 관해 언급 되었으며 조선후기 풍속화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에는 경대 앞에 .. 2019. 5. 4. 이전 1 2 3 4 5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