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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518

쇠소깍(제주.서귀포) 지명부터 특이한 제주 쇠소깍. 오래전에는 별로 일반인들한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찿아왔던 곳이다. 많이도 변했다 편의 시설에 데크길도 놓였다. 쇠소깍이란 쇠소와 하구 부분 바닷가를 통칭한다고 하는데 쇠는 소를 의미하고 소(沼)는 웅덩이. 깎은 끝이라는 뜻이란다. 효돈천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역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송림이 빼어난 자연환경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런 곳이다 보니 2011년 6월 30일 명승 78호로 지정되며 자연. 역사. 민속 분야에 매우 중요한 보존 가치를 가지게 되고 쇠소깍 주변에는 솔잎난. 파초일엽. 담팔수. 등 아열대성 식물이 서식 분포하며 주위에는 조면암. 병풍 바위와 차별침식 작용에 의해 양안에 사자바위. 기원 바위. 부엉이 바위. 코끼리바위 장군. 독수리 바위 등의 여.. 2022. 12. 8.
김창열 미술관(제주) 제주에는 미술관 개관 이후에도 여러 번 왔어도 물방울 화가로 널리 알려진 김창열 화백 미술관 관람은 처음이다. 물방울 그림 작품에만 일생을 바쳤다는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볼 기회를 가져 설레는 맘으로 큐브형 건물 미술관을 들어서 본다. 김창열 화백은 1929년 12월 24일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지난해 2021년 1월 5일 자로 당시 91세 나이로 타계하여 올해 2022년 9월 28일에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으며 감독은 김창열 화백의 아들인 김오안. 브리지트 부이오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신진 감독상을 수상하고 제61회 크라우프 영화제 실버 혼상을 수상 하기도 하였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2022. 12. 3.
새별오름(제주) 경북농업기술원 주관. 한국교육농장협회 경북 지부가 주최한 제주도 행사에 2박 3일 일정으로 참여하여 첫날 새별오름을 찾았다. 지난 시절에는 재주도의 오름이나. 곶자왈 같은 곳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건만 근래에 와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제주도에는 360개 정도의 오름이 분포되어 있는데 몇 개의 오름은 탐방했지만 오늘 이곳 새별 오름은 처음이다. 애월읍 봉성리에 소재한 새별오름은 새벨오름. 새빌 오름으로도 불려지고 신 증 동국여지승람에는 효 별악(曉別岳). 탐라지에는 효성악(曉星岳). 제주군 읍지에는 신성악(新星岳)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오름은 제주도 사람에겐 민속신앙의 터이며 생활 근거지인 촌락의 모태로서 신성시되었던 공간이다. 새별오름은 비고가 119m에 둘.. 2022. 12. 3.
황매산 억새(경남.합천) 봄이면 철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남 합천의 황매산이 근래에 가을이면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황매산(黃梅山)의 황(黃)은 부(富)를 의미하고 매(梅)는 귀(貴)를 의미 한다고 하는 이곳은 합천군 일대 황매산 17.99평방 킬로미터가 1983년 11월 18일 자로 군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었다. 2012년도에는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에 선정되고 2015년도엔 산림청 발표 한국 야생화 군락지 100대 명소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황매산 정상부 약 100만 평방미터 (약 30만 평) 억새 군락지가 어우러지며 합천 쪽에는 억새 평전으로 불리어지고 산청 쪽으론 억새평원이라 불려진다. 또한 이곳은 별과 은하수를 관찰 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주소: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산 .. 2022. 12. 3.
거제포로수용소(경남.거제) 거제 지세포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고 들려본 거제 포로수용소는 얼마 전에 다녀와 그때 시간 관계로 놓쳤던 구석구석을 가메라에 담아 봤다. 2022. 11. 30.
변강쇠.옹녀 묘(경남.함양) 경남 함양읍에서 마천면 방향 1023번 지방 도로로 접어들어 지안재를 지나 오도재를 오르다 보면 오른편에 변강쇠 옹녀 촌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 변강쇠 옹녀가 지리산 기슭에 살았다는 설화의 모티브로 변강쇠 옹녀 선양회에서 변강쇠와 옹녀가 넘나 들었다는 오도재 고개의 산 자락에 가묘를 조성하여 산길 주변에는 여러 모습의 옹녀 조각상을 설치하여 놓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 조각상들은 약간 민망 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거 같다. 올해(2022)로 21회째라는 옹녀제 개최 현수막도 보인다. 도로에서 10여분 거리 산속에는 변강쇠와 옹녀의 가묘도 조성해 놓았다. 변강쇠 옹녀의 묘 * 조선 후기 연행되던 판소리 12 마당 중 한 곡인 가루지기타령에 등장인물로 변강쇠타령. 또는 황부가(穔負歌)라는 이름으로 .. 2022. 11. 27.
외규장각(外奎章閣)인천.강화 몽골의 침입에 맞서 고려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에 옮겼던 곳 고려궁지에는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을 볼 수 있다. 외규장각은 조선 후기 정조가 설립한 규장각의 부속 도서를 보관하기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왕실외곽서고로 1782년 설립(정조 6) 규장각이 왕이 쓴 글과 왕실관련 도서를 보관하던 왕립도서관이었다면 외규장각은 부속 도서관이다. 병인양요(1866) 이전 까지는 외규장각 도서가 1007종 약 6000권을 보유하였다고 한다. * 의궤란 -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책들. * 조선왕실 의궤는 2007년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되었으며 제작시기는 1392~1910년으로 현재 소장 관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외.. 2022. 11. 18.
강화 고인돌(인천.강화)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우산을 쓰지 않으면 옷이 젖을 만큼 온다. 카메라 앵글에 빗방울이 튀어 촬영 하기에는 아주 악조건이지만 소나기가 내리는 것보단 그래도 위로가 된다. 15여 년 전에 답사를 했던 이곳은 우리나라 고인돌중에 가장 대표적이며 크기도 가장 큰 고유번호 18번 화강암 북방식 고인돌이다. 15년 전보다 주변이 많이 변했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조금만 유명세를 띄거나 지명도가 있으면 경쟁적으로 시설이 들어서고 여러 각도로 개발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강화는 대다수 탁자식 고인돌인데 이곳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 중 비 지정된 128번 고인돌을 제외하곤 9기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지만 현재는 4기만 남아 있다. 선사 청동기 시대에 이루어졌으며 면적은 69,293평방 미터에 달한다. 1.. 2022. 11. 18.
성공회강화성당(인천.강화)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한옥 형태의 강화 성공회 성당 정면에는 한자로 천주성전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 건물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111호(1981.7.15)에서 2001년 1월 4일 자로 사적 424호로 변경 승격되었다.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1889년 코프가 초대 한국 주교로 영국에서 서품을 받음으로 시작 이 되었으며 건물은 1900년(광무 4) 코프(Corfe.c.j)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처음 세례가 이루어진 것은 주교 축성이 있은지 7년 뒤 1986년 6월 13일 강화도에서 이뤄지며 이런 인연으로 강화에 가장 먼저 성당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경사지의 대지를 축성하여 불교 사찰의 구릉지 가람과 비슷하게 토지를 조성하여 앞마당에 보리수와 동쪽 방향에는 초대 사제들의 묘비를 세워 놓았다. .. 2022. 11. 17.
고려궁지(인천.강화) 고려궁지는 1232년도 고려의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야 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1964년 6월 10일 자로 사적 133호로 지정이 되고 2003년 복원한 외규장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면적이 7534평방미터로 현재 강화유수부 동헌. 유수부 이방청. 강화동종각이 있으며 옛 역사를 말해주는 400년 이상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고려궁지의 터줏대감이다. 2022. 11. 7.
인천근대문화거리(인천.중구)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 길 일원에는 인천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근대 문물과 관련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 연구하여 전시하여 놓은 각종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인천을 통해 처음 도입되었거나 인천에서 태동한 근대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함께 당시의 건축물도 과거로 돌아가게 한다. 2022.10.8 인천 개항박물관 2022. 11. 7.
인천차이나타운(인천.중구) 1883년 대한민국 인천항이 개항되며 1884년 이 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治外法權)(extraterrit0 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며 인천 차이나타운이 생겨 났다고 한다. 과거에는 물건을 파는 상점이 주를 이루었는데 현재는 거의 중국 음식점이다. 현재 이 거리는 한국 내 거주 중국인들로 초기 전착 민들의 2세나 3세들로 1세 때의 전통문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차이나타운을 고수.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말 임오군란 때 산둥성에 주둔 중이던 오장경(吳長慶) 수군이 파병되며 4000여 명의 군사와 40여 명의 상인이 들어오며 산둥 출신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천에는 화교(華僑)가 2000여 명 정도로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는 약 120 가구에 500여 명 정도라 한다. 주소:.. 2022.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