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7월 30일 개봉했던 김한민 감독의 "명량" 이란 영화 는
관객수 17.615천명으로 고객
수와 매출에서 1위를 차지했던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설장수의 실제의 묘가 이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찿아 가봤다 김원해 배우가 배설역을 맡았는데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경상우수사를
재냈던 장수다.
영화제작사에서는 이 영화를 역사적 사실에대한 철저한 조사와 이해의 과정을 거쳐
수십종의 난중일기 원역본을 비교하고 해석하여 정확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부분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해석과 역사자료등 방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영화제작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속에 왜곡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하여 배씨 종친회 이름으로
소송이 이루어졌었다.
배설장수묘( 성주군 금수면 명천2리 소재)
배설 1551(명종6년)~1599(선조32년)에 대하여 부정적인 기록에는
웜균이 장수를 소집해 끝까지 싸울것을 결의 하였으나 배설은 전세가 불리함을 짐작하며
비밀리에 퇴각을 모의 하였고 전세를 관망하다 스스로 판단 12척의 배로 남해쪽으로 후퇴하여
안전을 도모 한산도로 물러난뒤 군사시설.양곡.군기와 군용자재를 불태우고 남았던 백성을 피신..
이순신이 통제사가 된뒤 1597년 신병을 치료차허가를 받은뒤 도망하여 이에 조정에서 전국
체포 명령을 내리어 1599년 선산에서 권율에게 잡혀 서울에서 참형을 당했다가 뒤에
무공이 인정되어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 되어다고 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배설에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하여 전략적인 퇴각으로 악전 고투끝에 판옥선 12척을 이순신에 인계 하였고
배설이 한척의 전선을 구하지 못하고 원균과 함께 전사 하였다면 한산도 본영이 왜군의
수중으로 들어가 임란의 전쟁사는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라 추정.
배설은 당대 그를 벌 주었던 조정에서 참수되고 6년만에 복권되어 명예가 회복됨은
한사람의 영웅도 좋지만 그 영웅을 위해 반드시 희생양이 필요 한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배설장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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