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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514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1851년 9월 25일 출생하여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때 일본의 만행에 의해 시해를 당하기 까지 16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45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 하였습니다. 아래의 명성황후 생가는 태어나서 8세 까지 살던 집으로 당시 안채만 건물로 남아 있었으나 1995년도 사랑채.행랑채.별당을 복원 하였습니다. 2012. 6. 28.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경기.여주 나옹의 화장지 에 세워진 삼층석탑 나옹선사를 추념하여 세운 정자 강월헌(江月軒) 목조아미타삼존불이 모셔진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보전 마당에 서있는 600 여년된 향나무 보물 225호로 지정된 대리석재의 다층석탑 조사당 앞 향나무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祖師堂)에는 중앙에 나옹.좌우에 지공(指空)과 무학(無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 180호로 지정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지지 않은 부도탑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에 위치한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추측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절이름을 "신륵"이라 한 데는 미륵(彌勒)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2012. 6. 8.
세종대왕릉.영릉(世宗大王.英陵)경기.여주) 조선 제 4 대 왕 세종(1397~1450.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심씨 (1395~1446)를 합장한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 되었으며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유명합니다. 세종대왕.영릉과 효종대왕.녕릉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2012. 6. 8.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제 170호로 지정된 도산서원은 1501년(연산군7년) 에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에서 출생하여 1570년(선조3년)에 퇴계 이 황 선생 사후 4년(1574년.선조7년)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는데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을 사액(賜額)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은 34세에 과거급제 하여 단양군수.풍기군수,공조판서. 예조판서.우찬성.대제학.사후 영의정 추증 지금의 도산서원 자리에 1561년(명종16년)에 도산서당을 세웠고 주요저서로는 계몽전의.성학십도.도산십이곡.주자서절요. 심경후론.활인심방.예안향약.자성록 등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 친필로 선조임금 사액 도산서당 퇴계선생이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거처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곳으로 거처하는방을 완락재(玩樂齋)마루는 암서.. 2012. 5. 30.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주.안강.세심마을 이 서원은 우리나라 도학의 종장이라 칭한는 회재 이 언적 선생을 추모하는 선비들이 학업을 연마하던 곳 으로 선생이 돌아가신 19년 후 1572년(선조5년) 손자.구암공 이준공.경주부윤. 유림의 협조를 얻어 건립 하여 이듬해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국왕의 사액을 받아 현판은 추사 김 정희 가 쓰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등록 되었으며 사적 154호로 지정. 정문 역락문(亦樂門)은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 好) "멀리서 찿아오는 친구 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느뇨" 에서 따왔다고 하며 현판 글씨는 한 호 석봉이 쓰고 옆에 창건당시 심겨진 은행나무는 귀봉 권 덕린 선생이 심고 향나무는 손자 구암공 준(俊)이 심다. 정문을 들어서면 누마루집인 무변루(無邊樓)가 서 있는데 무변루라는 글.. 2012. 5. 26.
세심마을 세심대(洗心臺)경주.안강 경주.안강.세심마을의 옥산서원과 독락당 주변 경관을 찿는 이들은 한폭의 잔잔한 동양화를 연상 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회재 이 언적 선생이 주변 아름다운 경관의 산과 바위들에 손수 이름을 지어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여 동 의로 화개산.서로 자옥산.남으로 무학산.북으로 도덕산을 사(四)산(山)이라 옥산서원 앞의 세심대(洗心臺) 독락당 계곡의 관어대(觀漁臺) 관어대 맞은편 영귀대(詠歸臺) 북쪽방향에 탁영대(擢纓臺) 징심대(澄心臺) 를 오대(五臺)라 하였다. 큰바위에 새겨진 세심대(洗心臺)와 옆조그만 소(沼)를 용추(龍楸)라 이름지어 그 글씨가 퇴계 이 황의 필적으로 유명합니다. 2012. 5. 26.
세심마을 정혜사지(淨惠寺址)십삼층석탑(경주.안강) 세심마을 독락당 뒷편으로 0.5km 쯤 올라가면 국보 40 호로 자정된 통일 신라시대 9세기 쯤 세워졌을 것 으로 추측된다는 정혜사지 13층 석탑과 여기서 약 200m 거리에 회재 이 언적 선생의 아들 잠계공 이 전인(李全仁)의 위패가 모셔진 장산서원(章山書院)이 있으며 잠계공 이 전인은 부모에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대한민국 충의효열록(忠義孝烈錄)에 올라있으며 독락당 앞 당수나무 아래에 잠계공 이전인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2012. 5. 26.
세심마을 계정(溪亭).관어대(觀漁臺)경주.안강 개울가 반석위에 세워진 정자로서 바위의 자연스런 모양을 거스리지 않고자 바위 위에 세우는 기둥의 길이를 조정하여 정면 3칸으로 계곡쪽으로 쪽마루가 있고 난간이 설치되어 관어대를 바라볼수 있습니다. 2012. 5. 25.
세심(洗心)마을 문화재(경주.안강) 경북 경주시 안강읍 새심길(20-9)에 위치한 새심마을은 1491년(성종22년)에 경주 양동마을 에서 태어나 당시 영남학파를 주도하고 어린 나이에 유교의 성리(性理)를 구명하고 후에 이단의 사설을 물리치고 성리학의 본원을 바로 세웠다는 회재 이언적 선생과 아들 잠계공 이 전인의 흔적이 살아 숨쉬는 마을로 kbs가 선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한옥으로 뽑인 옥산정사(玉山精舍)와 독일 베를린 마르짠 지역의 세계의 정원에 "서울정원"의 이름으로 재현되어 외국인들의 감탄과 찬사를 받았다는 계정(溪停)을 비롯한 국보.보물.유물 등이 150 여점의 보물과 수천 여점의 유물을 간직한 곳 입니다. *독락당(獨樂堂)은 보물 413호로 1532년 관직을 삭탈 당하고 낙향하여 7년여 기거 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한 곳 으로 독락.. 2012. 5. 24.
비슬산.대견사지(경북.달성) 대견사지는 비슬산 1034m 높이에 있었던 절터로 신라 현덕왕 (서기 810년)창건 하여 1917년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사 되었는데 1200년전에 보당암으로 창건하여 보각국사.일연스님이 1227년 22세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하여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였으며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 유명하며 대견사는 조선.태종.세종대에 증수하여 현재의 대견사로 개칭하였는데 임진왜란때 전소되고 광해군과 인조대에 중창 하였으나 대한제국 몰락으로 일본의 기를 꺽는다는 속설에 의거 1917년 강제 폐사된 슬픈 사연을 간직한 사찰이 있던 곳 입니다. 2012. 5. 19.
비슬산. 소재사(琵瑟山.消災寺) 경북 달성군 유가면 용봉리 4번지에 소재한 소재사는 재앙을 소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기록이 없으나 고려 공민왕 7년(1358) 진보법사가 중창을 하였고 조선시대(1457)세조3년 활륜(活輪)선사가 중건 1510년(중종5년) 선주외암(善珠外巖)스님이 중수 하였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2012. 5. 19.
오륙도(五六島) 부산.남구.용호동 오륙도는 부산 용호동 앞바다 물결속에 솓아있는 6개의 섬을 말하는데 육지에서 가까운거 부터 방패섬.솔섬.수리섬.송곳섬.굴섬.등대섬으로 나누어지며 이 섬은 12만년 전 까지는 육지에 이어진 작은반도 였으나 오랜 세월동안 침식작용에 의하여 육지에서 분리되어 형성된것으로 추정 된다고 하네요. 2012.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