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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기도37

종묘정전(宗廟正殿) 서울 종묘는 조선의 역대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말하는데 이곳 정전은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모셔놓은 곳이다. 모두 19개의방에 49신위를 모셔 놓았다. 이 정전이1985년 1월8일자로 대한민국 국보 227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면19칸 측면3칸.익공계 박공지붕건물로 이곳의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종로157(훈정동1~2번지) 동시대 단일목조 건축물중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영녕전과 구분 하기위하여 태묘(太廟)라고도 부른다. 종묘건물이 처음 지어진 때는 1394년 10월 *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을 종묘라 하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 종묘라 부른다. 종묘 전체의 면적은 194.331평방미터 (58.800평). 종묘정전(宗廟正殿) * 왕과 왕비가 승하후 궁궐에.. 2019. 5. 28.
종묘의 신로(神路)와 향대청(香大廳) 종묘의 외대문(外大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신로의 안내판이 보인다. 한글과 영문으로 "이곳의 가운데 길은 신로입니다. 보행을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 표지판이 거친돌이 깔려있는 중앙 신로에 놓여있다. 우측으로 아름다운 한옥 건물 향대청을 들려 종묘 투어가 시작된다. * 종묘의 정전건물로 들어가는 남문으로 이어지는 신로는 돌로 바닥을 깔아 놓았으며 가운데 약간 높은부분이 혼령이 다니는 신로로 폐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가 합쳐진 신향로며 오른쪽 약간 낮은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왼편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 자리로 구분된다. 망묘루(望廟樓) 전경 * 이 망묘루에서 제를 지내기위해 거동한 임금이 머물면서 종묘를 생각하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하는 공간이라 한다. 향대청(香大廳) 전경 향대청.. 2019. 5. 27.
국보 227호 종묘를 가다. 지난 5월1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1995.12.9 등재) 이며 대한민국무형유산으로 등록된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소재한 종묘(宗廟)를 찿아 우리의 역사를 알아본다. 종묘의 정문인 창엽문을 들어 가기전 종묘어정(宗廟御井)과 하마비(下馬碑). 그리고 이상재선생 동상을 둘러본다 * 종묘란 조선왕조 역대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사당으로 상대적으로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궁궐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 붐비는 곳이라 문화관광의 분위기보다 엄숙함이 더 할것같은 종묘. 먼저 도로변에 세계유산 종묘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 하마비는 왕이나 장군.고관 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앞에 세워 놓기도 하는데 유명 사찰앞에도 하마비가 세워져 있음을 종종 볼수있다. * 하마비의 시작은 1413년(태종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 2019. 5. 25.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서울) 옛동대문 운동장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바뀌면서 동대문운동장의 추억과 흔적을 남기기위해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전시관을 만들어 놓았다. 옛동대문운동장의 면적은95.764평방미터(약29.000평) 로 주소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 7가1 1926년도에 준공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명칭도 경성운동장에서 서울운동장으로 바뀌고 1984년도에 다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어 2003년도에 육상경기장이 폐쇄되었으며 2008년도5월달에 철거가 시작. 2009년도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2014년도3월달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개관되었다. 당시에는 서울인구 25만명을 기준으로 설계가 되었다고하며 1966년도에 야간야구경기실시필요로 40.5m의 조명탑을 6군데가 설치되었는데 현재는 1개만 남기고 .. 2018. 7. 31.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 서울 옛 동대문운동장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로 변신을 하였다. 더나은 세상을 상상하여 꿈꾸고(dream) 창의적 생각을 실현하여 디자인 하고(design) 다양한 생활을 구현하여 누리는 DDP (play) 유려한 곡선과 초대형 지붕으로 만들어진 ddp는 세계 최대 규모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5800톤의 철근을 사용해 기둥없는 전시.컨벤션 공간을 만들었고 외장 패널이 45133개가 들어갔다고한다. 건물안에는 알림터.배움터.살림터.어울림광장.디자인장터로 이루어져있다. *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이라크 출신 여성건축가 자하하디드가 설계를 하였으며 프리츠커건축상을 여성건축가 로서는 세계최초로 수상한 건축가로 건축계에서는 노벨상이라한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고함.. 서울 2018. 7. 29.
백석동천(白石洞天)백사실계곡. 세검정 정자에서 가까이에 있다는 백석동천을 새벽에(2018.7.22)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본다. 안내판에는 위치가 종로구 부암동 산 7번지로 북악산에서 세검정으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되어있다. 마침 아침 운동을 하러가시는 분이 계셔서 안내를 해주시어 어렵지않게 찿을수있어 백사실계곡에 들어서니 이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초입에 현통사라는 자그마한사찰이 눈에 들어오며 사찰 아래로 흐르는 계곡을건너 오르니 이곳에는 도농룡이 서식하며 계곡에는 가재도 살아가고 있다는 청청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그냥 조선중기 백사 이항복 선생의 별사터가 있다는 상식 정도로 알고 올라 왔는데 상상도 하지않았던 새로운 세계에 또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었다. 지척간에 빌딩숲이 있고 매일매일 수많은 .. 2018. 7. 27.
세검정(洗劍亭)서울.종로.신영동 애지리의 딸내미(애. 지. 리)들은 사실 서울에서 다 살아가고 있다. 부모로서는 거의 방목형이라 자주 들르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도 주지 못한다. 벼르고 벼르다가 얼마전에 이사한 곳을 찾았다. 지방에 살다 보면 서울이란 곳은 늘 생소하다. 이사한 곳이 신영동 "세검정"이라 둘째가 세검정(洗劍亭)에 유래를 설명해주어 그동안 사실은 이조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음을 새삼 느껴본다. 첫째. 둘째의 안내로 집 가까이에 있는 세검정 정각 투어를 시작해본다. *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68-6에 위치한 세검정은 서울시 기념물 4호로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하였고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던 곳으로 이곳 세검정은 총융청을 옮기면서 군사들이 .. 2018. 7. 27.
성종대왕태실(成宗大王胎室) 서울.창경궁 이 태실은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 태전리에 있던 것을 1928년 이왕직(李王職)에서 서울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당시 매일신보에는 태실의 상태가 가장 좋다하여 태실의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옮겨 왔다고한다. * 이왕직은 일제 강점기에 이왕가(李王家)와 관련한 일체 사무를 담당하던 기구로 이왕직의 이(李)는 조선 왕실의 성(性)인 전주 이씨를 지칭하고 왕(王)은 일본의 왕실 봉작제의 작위명을 의미하며 직(職)은 업무룰 담당하는 직관(職官)이란 의미를 말한다. * 초대 이왕직 장관으론 민병석 으로 업무는 1911년 2월1일부터 시작 하였다고 한다. * 사실 이왕직은 일제가 자신들의 왕족 봉작제를 이용해 대한제국 황실을 일본 천황가의 하부 단위로 편입 이들을 예우하는 한편 회유.통제 하기위해 설치한 기구라 볼수있다. 2017. 6. 6.
평택항(경기도) 중국 위해시 장보고 유적지를 배편을 이용해 가기위해 경기도 평택항에서 출항전 여유있는 시간이 있어 평택항 주변 모습과 야경. 그리고 일몰 풍경들 입니다. 배 안에는 일명 보따리상 분들이 많아 보따리 상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습니다. 평택항에만 보따리상들이 2000 여명 정도 된다고 하며 인천.군산항 까지 합하면 약 5500 여명으로 소무역 연합회까지 구성하여 살아 가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한번 중국을 같다오면 그래도 7~10만원 정도는 벌었는데 요즈음엔 휴대할수있는 량이 적어지면서 그나마 수익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어 재미가 없답니다. 주로 60대 중반 이상되는 연령되로 사회 일선에서 퇴직한 분들로 시간 보내기위한 소일거리로 나선 분들이 대다수 라네요. 자신들을 노숙자가 아닌 .. 2015. 11. 7.
남대문 야경(서울.2013.12.8) 대한민국 국보1호인 서울 남대문(숭례문)의 야경 모습입니다 2013년 12월 8일 저녁 촬영 2013. 12. 19.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왕비로 1851년 9월 25일 출생하여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때 일본의 만행에 의해 시해를 당하기 까지 16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45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 하였습니다. 아래의 명성황후 생가는 태어나서 8세 까지 살던 집으로 당시 안채만 건물로 남아 있었으나 1995년도 사랑채.행랑채.별당을 복원 하였습니다. 2012. 6. 28.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경기.여주 나옹의 화장지 에 세워진 삼층석탑 나옹선사를 추념하여 세운 정자 강월헌(江月軒) 목조아미타삼존불이 모셔진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보전 마당에 서있는 600 여년된 향나무 보물 225호로 지정된 대리석재의 다층석탑 조사당 앞 향나무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祖師堂)에는 중앙에 나옹.좌우에 지공(指空)과 무학(無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보물 제 180호로 지정 누구의 부도인지 알려지지 않은 부도탑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에 위치한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추측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절이름을 "신륵"이라 한 데는 미륵(彌勒)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2012.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