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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유적지를 찿아(불교)

조계사(曺溪寺)서울

by 애지리 2018. 7. 29.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와 전통을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를 찿았다. 오늘의 서울의 예상온도는 한낯 최고가 38도에 달할꺼라는 일기예보다.

아침부터 땀은 범벅이며 연신 입에서는 덥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국불교의 1번지. 한국불교의 대표 중심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인 조계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란 현판이 다른곳 일주문과 다르다.

산(山)이름이 없으며 보편적으로 글자의 순서가 우(右)에서 좌(左)측 방향인데 이곳은 반대다.

또한 일반적인 사찰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도심지에 있다는것 외에도

지난 5월 mbc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 현 총무원장인 설정스님 은처자및 학력위조의혹

형은 스님(교육원장)성폭력의혹.일부승려 도박행각. 방송의 연유인지 입구인 일주문부터

현수막이 걸려있다. 처음으로 와보는 곳. 또한 조계사 경내는 옛 민영환 집터였음에 지금의

불교 내부의 잡음은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씁쓸하게 만든다.

빠른 시일내에 대한불교 조계종의 정상화를 빌어본다.

 

조계사 일주문

이 일주문은 2007년 10월9일 낙성 하였으며 현판과 주련은 송천 정하건 선생이

글씨를 썼고 중요무형문화재 106호인 철제 오옥진 선생이 서각하여 조성 하였다.

사천왕상

* 일주문 건물에 세워놓은 사천왕상은 특히한 방법으로 스테인레스 재료로 섬세하게 만들어 세워놓았다.

대웅전 건물과 .천연기념물인 백송.마당의 연꽃

천진불과 백송

서울시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에 걸어 놓은 등

조계사 대웅전 삼존불중 약사여래부처님

조계사 대웅전

대웅전 편액(大雄殿 扁額)과 삼존불중 석가모니부처님.

* 조계사 대웅전은 서울시 지방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단층건물로는

최대규모를 자랑하며 1938년 낙성식을 가졌으며

* 대웅전 편액은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대웅전 편액을 탁본하여 조각한 것으로

조선시대 선조대왕의 여덟 번째 아들인 의창군 이광(李珖)1589~1645 의 글씨다.

극락전(極樂殿)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조계사에는 좌우에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함께 모시고 있다.사찰에 따라서 극락전을 아미타전.무량수전.수광전이라고도 하며

조계사에서는 주로 소규모의 법회와 기도의식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범종루(梵鐘樓)

*범종루는 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版).범종(梵鐘)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있는곳으로

이 순서대로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그리고 특별한 행사때 친다..

이 중에서 법고는 땅 위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목어는 물속에 사는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운판은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친다.

범종은 새벽예불 때 28번. 저녁예불 때 33번을 치는데 이는 수직으로 욕계.색계.무색계.등 28천과

수평으로 33천(도리천)에 이르는 온 우주에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여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8각10층 부처님진신사리탑

* 이 석탑 안에는 스리랑카 출신의 20세기 불교중흥운동의 위대한 선구자였던

아나가리까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 1864~1933)스님이 1913년 8월 조선을

방문하여 당시 조선불교계에 기증한 부처님진신사리1과가 봉인되어 있다고한다.

대웅전앞 사자상

백송나무옆 천진불상

천연기념물 제9호 조계사 백송

민영환 집터 표지석

* 민영환(閔泳煥)- 1861~1905) 내부대신. 병조.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주미전권대사를 부여받았고

한국의 최초의  러시아 특사였다.

1905년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이곳 본가에서 세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 하였다고 한다.

첫째유서는 국민에게 각성을 요망 하였고

둘째 유서는 재경 외국 사절에게 일본의 침략에서 한국을 구해줄것을 요망.

세번째 유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글 이었다고한다. 자결후 원임대신 조병세.전참판 홍만식.학부주사 이상철등이

자결하였고 인력거꾼도 일제침략에 항거하여 자결을 하였다고한다.

* 민영환의 유해는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36에 기념물 18호로 지정 되었으며 동상은

안국동로타리에 있다가 와룡동비원으로 옮겨졌다 다시견지동 조계사 옆으로 이전.

* 민영환 선생이 자결(1905.7.5) 할 때 선생의 의복이 놓였던 자리에서 이듬해 대나무가 솟아나와

민영환선생 부인이 신문사에(대한매일신보 1906.7.5)와서 녹색대나무가 솟아올랐다고 알려주었으며 그당시

김은호화백.김우현 목사가 목격 하였다고한다.

* 이후 일제가 이사실을 알고 대나무를 뽑아 버렸는데 뽑혀진 대나무의 잎을 세어보니 45개로 민영환선생의

돌아가실때 나이와 일치 하였다고 부인(박수영)이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 일제가 뽑아버린 대나무는 현재 고려대 박물관에 1962년도에 기증하여 보관중이며 이곳 박물관에는

혈죽과 1906년 7월15일 일본인 사진기사 기쿠다가 촬영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으며 혈죽은폭8cm에 길이는50cm,

(1906년 7월5일 대한매일신보 현 대한매일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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