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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국립공원에는/구석.구석 알아야 할곳33

룸비니광장(합천해인사) 가야산 해인사 룸비니 광장은 요금소를 지나 들어가다 주유소 맞은편 차량 통행 도로방향으로 조금가면 오른편 에 조금 넓은 광장에 오른손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는 석가모니의 어린 모습의 동상이 보입니다. 이곳을 룸비니 광장이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 룸비니는 석존이 태어난 곳으로 중인도 카탈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산으로 지금의 연합주 지방 코라쓰크풀주의 북쪽에 해당 하는곳으로 네팔 남쪽 경계선 부근 작은 숲을 칭하며 숫도다나의 대를 이을 첫 아이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카팔라바스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나로 향하던 마하 마야 부인이 갑자기 닥친 산기를 느끼고 사라수 가지를 잡고 서있는 동안 무우수(無憂樹)나무 아래서 장차 붓다가 될 아이 석가모니를 낳게 되었는데 이때가 기원전 623.. 2016. 2. 10.
해인사.정료대(海印寺.庭燎臺) 해인사 삼층석탑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바라보면 작은 석조물 하나가 있다. 그 모습은 석등石燈과 유사하지만 그 모양 은석 등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해인사는 신라시대 802년(애장왕哀莊王3)에 순응, 이정이 창건하였다. 큰 법당인 대적광전은 당시 비로전이라는 2층 건물이었는데 조선시대 1488년(성종成宗19) 인수대비, 인혜 대비의 지원으로 학조學祖대사가 중창하면서 지금 의대 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왕실 원찰 기능을 담당하던 사찰로서, 큰절에 남아 있는 석조유물인 해인사 삼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길상탑, 정료대는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료대는 원래 사찰, 서원 등에서 야간 행사가 있을 때 관솔 지나 송진 등을 태워 경내를 밝히던 것으로 노주석 또는 불우리라고도 한다... 2016. 2. 9.
해강 김규진 현판.편액(海岡 金圭鎭 縣板.扁額) 우리나라 에서 가장 많은 편액을 남긴 사람으로 알려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고종5년(1868~1933) 선생의 흔적을 가야산에서 찿아 봤습니다. 해강 김규진 선생 한테는 이러한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한국 근대 서화가. 황실 사진가. 大字(대자)에 독보적인 존재. 한국 최초 사진관 운영(천연당 사진관)등 전국 곳곳 사찰에 걸려있는 편액들 중에 해강 선생의 글이 상당히 많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 현판이란: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 조각을 말하는데 현판은 절이나 누각.사당.정자등 들어가는 문위나 처마 아래에 걸어 놓는것. * 편액이란: 종이.비단.널판지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위에 걸어놓는 액자를 뜻하며 편제(扁題)라고도 부름. *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편액.. 2016. 1. 23.
가야산(伽倻山)유상곡수(流觴曲水) 가야산 해인사나 팔만대장경전을 갈려면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을 통과 해야 되는데 일주문 들어 가기전 오른쪽 공터에 보면 돌로 설치된 둥근 도랑같은 구조물이 방치 되어 있어 해인사를 찿을때마다 표지판도 없고 가야산 해인사 관련 책자에도 기록이없어 궁굼하던차에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지 2015년(불기2559년.단기4348년) 6월(400호) 뒷표지에 실려있어 올려봅니다. * 1625년 가야산과 유람한 뒤 남긴 허돈의 "유가야산기"에 유상곡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눈썹이 진하고 흰 머리의 늙은 승려가 나와 말머리에서 인사를 하엿다. 일주문을 통하여 들어 갔는데.일주문 위에는 석천(石泉)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깍아 빙 돌아가게 하여.. 2016. 1. 4.
부도(浮屠)가야산.해인사 부도는 승녀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을 말 하는데 또한 승탑.사리탑.부두.포도(蒲圖).불도(佛圖) 라고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가기전 오른편 백련암. 지족암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좌측 길과 접하고 있는 사리탑 입니다. 2015. 10. 2.
윤고암대종사.백용성조사 사리탑(가야산.해인사) 이 사리탑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 왼편 홍제암 방향으로 가다보면 윤고암대종사리탑과 백용성조사 사리탑이 모셔져 있는 산아래 잔디밭이 보입니다 . 윤고암대종사리탑(尹古庵大宗舍利塔)-전 조계종 종정 백용성 조사 사리탑(白龍城 祖師 舍利塔)-3.1 독립운동 민족대표 2015. 10. 1.
해인사 외나무다리(경남.합천) 해인사 외나무 다리는 승유억불 정책이 행해진 조선 시대에 말을 탄 양반이 법당 앞까지 들어오는 행패를 막기위해 만들어 졌다 하며 언제 부턴가 이 다리를 건너야 극락에 도달 한다는 속설이 정해 지고 있다고 합니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돌 표지석에 아래와 같은 게송이 쓰여 있습니다. 橋 忌 通 馬 牛 (교기통마우) 다리에 소와 말이 지나는 것을 꺼림이니 後 人 信 此 規 (후인신차규) 후세 사람들은 이를 본보기 삼을 지니라 古 來 架 一 條 (고래가일조) 옛날부터 한 가닥으로 건너 지름이니 愼 勿 加 添 補 (신물가첨보) 삼가 첨가 하거나 덧붙이지 말도록 하라 다리 건너에 있는 표지석이 불기 2975년에 세워 졌으니까 서기로 1948년이 되네요. 2015. 10. 1.
다비장(茶毘場)가야산.해인사 아무런 표지판도 없이 고요함속에 정적만이 감도는 이곳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곳이네요. 이곳은 스님들의 마지막 생을 정리하는 가야산 해인사 다비장 입니다. 다비(茶毘)를 백과사전을 찿아보니 범어 자피타(jha-pita)를 음역한 말로서 분소(焚燒).연소(燃燒)등으로 의역되며 유해를 화장하는 일을 뜻하는말이며 순수한 불교 말로서 일상용어는 아니라고 합니다. 2015. 9. 7.
가야산 해인사 원표(元標)표지석(경남.합천) 경남.합천.해인사 일주문 들어가기전 10 여m 전방에 사각형 이정표 표지석이 서있는데 한자로 원표(元標)라 음각되어 있으며 4면에는 합천군.거창군.진주군.고령군.대구부는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데 김천군.성주군은 거리 표시가 없네요. 합천군은 九里 三十三町 진주군은 二十二里 九町 거창군은 十二里 十三町 고령군은 八里 대구부는 十七里 二十四町라 음각 되어 있는데 1리는 지금의 10 리에 해당되며 1정은 360자로 약 109m 정도 된다고 하면 합천군은 9리 33정으로 환산하면 약 40km 정도의 거리가 됩니다. * 아래 글은 2005년 7월호 월간해인지에 실린 글 입니다. 해인사 일주문 옆 원표元標를 아시나요! 이 달의 이야기 - 종현 / 해인지 편집장 2005년 07월 281호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스님들.. 2015.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