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성지는 제주 모슬포성당 구역에 속하며
정난주(마리아) 묘가 안치된 곳으로
정난주는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장녀로서
15세의 어린나이에 진사시험에 장원 급제한
황사영(알렉시오)의 부인으로 1801년 박해때
황사영은 충청도 베론에서 능지처참으로 순교 하였고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아내인 정난주는 제주도.두살된 아들
경한은 추자도 섬에 유배되었으며
정난주는 모슬포에서 37년동안 신앙을 지키며 노비로 살다가
1838년 66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대정성지
대 |
조선/조선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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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성터 |
유형 | 유적 |
크기 | 둘레 4,890자, 높이 17자 4치 |
지정 (지정일)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 (1971년 8월 26일) |
건립시기 | 1418년(태종 18) |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리 |
분야 | 예술·체육/건축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보성리·인성리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터.
[내용]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 대정현의 치소(治所)를 둘러쌓았던 성터로 1418년(태종 18)에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4,890자, 높이 17자 4치이고, 동·서·남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문 위에는 망루(望樓)가 있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는 성 안에 우물이 없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 식수의 어려움과 화재에 대한 예방 대책이 없다 하여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을 조정에 건의한 적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1599년(선조 32)에는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과 포대(砲臺)를 더 쌓기도 하였다. 더욱이 동·서·남의 3문앞에는 옹중석(翁仲石, 속칭 돌하루방)이 각각 4기씩 세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제자리를 떠나 흩어져 있다.
동문은 1795년(정조 19)에 현감 고한록(高漢錄)이 중수하였고, 1827년(순조 27)에는 현감 박상률(朴尙律)이 동·서문을 각각 중수하였다. 남문은 당초 해안루(海晏樓)라 편액하였는데, 1770년(영조 46)에 현감 이관(李寬)이 이를 중건하였다.
성은 현재 대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중 북쪽의 성체(城體)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무너진 곳도 현재 그 일부가 복원되어 있으며, 제주 3개의 읍성(邑城) 중 성터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당시의 관청 건물로는 성 안에 객사동헌·어변청·아사·향사당·영안관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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