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의 대적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 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는 이름을
봉서사(鳳棲寺)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활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레의 증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조선시대의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學祖)
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3년 곧 서기 1852년에는 우룡(雨龍)스님이 중수 하였으며
고종11년 곧 서기 1874년에는 비구니인 성주(性主)스님이 중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海雲)스님과 혜암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 하였다.
원당암에는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 에서도 보물 제51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점판석(粘板石)다층석탑과 석등.그리고 정교하게 안상(眼象)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들은 중요한 사적으로 꼽힌다.
보광전과 점판석 다층석탑.석등(보물518호)
달마선원
미소굴
미소굴 현판
혜암스님 영정
원당암 전경 멀리 흰 부분은 가야산정상
사찰 앞 텃밭에 스님이 가꿔 놓은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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