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충청도53 부여 궁남지(宮南池)충남.부여 충남 부여에 있는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의해서 궁남지라고 부르며 연못이 어떤 모습으로 조성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며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개의 주춫돌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건물터가 확인 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본기 무왕35년(634)조에는 "3월에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리나 끌어 들였으며 네 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 하였다 라고 기록. 이곳엔 매년 7월 말이면 서동 연꽃축제가 열린다. 궁남지는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최고의 궁원지(宮苑池)로 조성 기록이 명확히 알려져있고 백제의 조경 기술과 도교문화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의로 1964년 사적 135호로 지정. (2016. 6.4 촬영) 2016. 8. 8. 백마강(白馬江)과 고란사(皐蘭寺) 부여 부여읍 구교리 백마강변에는 부소산 고란사를 오르내리는 황포돗대 선착장의 이름이 구드래나루터로 이곳은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선착장에 내리면 부소산을 관광 할 수 있습니다. * 백마강은 일반적으로 금강변 부여읍(扶餘邑)정동리의 앞 범바위(虎岩)에서 부여읍 현북리 파진산 모퉁이까지 약16km구간을 백마강이라 칭함. * 백마강 명칭유래는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라 하고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白馬江)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백제 말기보다 160년 앞선 무녕왕 시대의 기록에 이미 금강을 백강(白江)으로 표기했던 사실이있고 역사적으로 말을 크다는 뜻으로 써온것을 감안할때 백마강은 백제에서 가장 큰강 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야.. 2016. 7. 7. 백제문화단지.능사(陵寺) 백제문화단지 안에 있는 능사(陵寺)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위한 백제 왕실 사찰로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군된 유구의 규모와 동일하게 건물 사이 간격. 기둥과 기둥사이의 간격 등을 1:1로 재현 하였다. 능사는 발굴 조사 결과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백제시대 대표적인 가람양식으로 확인되었다. * 능사 안 건물은 중문이라 칭하는 "뜻이 크게 통한다는"의미의 대통문(大通門)을 입구로 능사5층목탑(陵寺五層木塔).금당이라 불리는 대웅전(大雄殿).서부속채인 향로각(香爐閣). 강당인 자효당(慈孝棠).강당지동익사의 숙세각(宿世閣).강당지서익사의 결업각(結業閣). 동부속채인 부용각(芙蓉閣).이 있다. * 능사(陵寺)란- 문화재 지정명칭은 "능산리사지"이나 성왕의 원찰로서 왕릉의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능.. 2016. 7. 7. 백제문화단지(정양문.사비궁) 백제문화 단지는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374(합정리 575번지)에 위치 하고 있으며 찬란했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총 17년간의 역사적인 공사 끝에 이곳 일원 3.276천 평방미터에 6.904억원을 투자하여 조성되었다. 문화단지 내에는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개국 초기 궁성인 위례성.백제 묘제를 보여주는 고분공원. 충남 도민의 기증으로 조성된 백제숲.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관 등 1.400여년 전 문화대국이었던 백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양문(正陽門) 정양문을 들어서면 이런 광장을 지나게 된다. 사비궁을 들어서는 천정문(天政門) 천정전(天政殿) 2016. 7. 6. 송산리고분군과 무령왕릉(충남.공주) 이곳 송산리 고분군은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 5-1에 위치하고 있으며 웅진시기(475~538년)의 백제왕릉군으로 7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다. 1~5호분은 굴 모양의 돌로 쌓은 무덤(석실분)이고. 무열왕릉과 6호분은 터널용 벽돌로 쌓은 무덤(전축분)이다. 특히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발굴 되었으며 축조시기(525년)가 확인되며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교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 되었는데 이는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한국 고대의 유일한 왕릉으로 1.500 년 전의 화려하고 세련된 미의식, 수준 높은 공예기술을 통해 찬란한 백제 문화를 엿볼수 있다고 한다. * 이곳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제.. 2016. 7. 6. 시인 정지용(鄭芝溶)생가(충북.옥천)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우리의 언어를 시적 형상화하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시인으로 추앙 받고있는 시인 정지용 생가는 충북.옥천군.옥천읍.향수길 56에 위치 하고 있으며 육영수 생가 에서는 0.8km 거리에 있는 생가는 정면3칸.측면2칸이며 퇴간 구조이다.이 외에 돌담과. 사립문.초가.우물.장독대 등이 있으며 내부 시설에는 문학교실과 영상실.시 낭송실.문학전시실로 이루어져 있고 이곳에서는 문학체험(시.영상시화.향수영상.시어검색.시낭송)을 할수 있습니다. 마당엔 정지용 동상이 우뚝서서 지키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정지용 시인의 주요 작품과 시집으론 시집: 정지용시집.백록담 등 산문집: 문학독본.산문 등 시: 향수.유리.. 2015. 12. 16. 석연지(石蓮池)보은 법주사 보은 법주사 경내에 있는 석련지는 국보 6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성덕왕 19년(720)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95m.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 조형물로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굄과 한 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 것이며 특히 동자주(난간의 짧은 기둥) 의 형태는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자주와 유사함. 2015. 12. 14. 석조희견보살입상(石造喜見菩薩立像)법주사 보살상은 보물 제1417호로 전체 높이가 213cm 규모로 크게 신체.공양물.대좌의 3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자연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가로 네모 반듯한 모양의 받침돌을 그위로 중심부에 해당하는 몸통을 세워 고정시켜 얼굴 부분은 마열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 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 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 되었다. 향로를 받쳐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 부위의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 옷의 표현 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 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시기인 720년 전후의 작품으로 추정. 2015. 12. 14. 법주사 원통보전(圓通寶殿)충북.보은 보물 제916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사모지붕건물이다. 공포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으로 처마가 깊게 숙여서 건물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이 보인다.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마루가 한곳에 모여 있으며, 그 정상에 석조로 만든 절병통이 놓여 있다. 이것은 금산사대장전(金山寺大藏殿, 보물 제827호)에서 볼 수 있었던 석조물로 그 형상이 아주 고격(古格)이다. 또 정방형(正方形)이지만 정면 3칸이 측면 3칸보다 약 2자 정도 큰데, 이것은 정확한 정방형일 때 일어나는 착시 현상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건물 내부에는 4개의 기둥이 네 귀퉁이마다 서 있어 이것을 4천주(天柱)라고도 부른다. 이는 추녀 뒷몸을 결구하기 위한 것인데, 뒤편의 두 기둥을 이용하여 후불벽을 만들었다. 후불벽.. 2015. 12. 14. 법주사대웅보전(法住寺大雄寶殿)충북.보은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14년(553)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 헤공왕12년(776)에 진표율사가 고쳐 지었으나 임진왜란시 불타 버린후 인조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 402.80평방미터. 높이가 약19미터에 으르는 대규모 건물로 무량사 극락전.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건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5.5미터 허리둘레 3.9미터 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 좌상이 안치되어있다. * 법주사 대웅보전은 보물제 915호지정 *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대웅전을 격을 높여 부를때 대웅보전 이라하며 * 대웅은 고대 인도의 "마하바라" 를 한역한.. 2015. 12. 14. 통일호국 금동 미륵대불(속리산.법주사) 이 금동 미륵대불은 충북.보은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 경내에 있으며 신라 혜공왕12년(서기776년)에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그때부터 모신 미륵 부처님을 조선조 고종9년(서기1872년) 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 마련 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 일제 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 하던중 80% 공정 상태에서 6.25동란으로 중단. 1963년에 박추담 주지스님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과 이영자 여사의 시주로 복원 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 미륵 부처님이 완성 회향 되었다. 1986년 류월탄 주.. 2015. 12. 13. 속리산 법주사(충북.보은) 일주문(호서제일가람) 법주사 입구 5리숲 속리산 법주사 부도전 금강문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황문과 함께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곳으로 금강석과 같은 깨어지지 않는 마음을 내어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는 서원이 이루어 지도록 스스로 다짐 하는곳이다. 대개 밀적금강역사(훔금강.수비)와 사자를 타고있는 문수동자.나라연금강(아금강.공격) 과 코끼리를 타고있는 보현동자가 그려져있다. 천왕문 사찰의 삼문 가운데 두번째 문으로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에 있으며 네 방위를 수호하는 지국천왕(동방.칼).증장천왕(남방.용과여의주).광목천왕(서방.비파) 다문천왕(북방.탑)을 봉안. 사천왕은 인도 전래의 신이었으나 불교에서 수용 제석천왕을 섬기며 불법을 수호. 다문천왕(북방) 증장천왕(남방) 지국천왕(동.. 2015. 12. 12.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