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376 포천(布川)계곡.옥계(玉溪).성주4경 포천계곡은 성주군 가천면 화죽(花竹)1리 대실(竹谷)마을에서 가천면 신계리(新界里) 갈곡(葛谷)마을(해발550m) 아래 만귀정(滿歸亭)까지 약 10km걸쳐 가야산 북쪽에서 흘러 내리는물로 형성된 계곡을 칭하는데 이조시대에 공조판서를 지낸 응화 이 원조 선생이 경관이 뛰어난곳 아홉군데를 포천구곡이라 명명하고부터 이 계곡을 포천계곡 이라 불리어 졌다고 하는데 기록상으로는 옥계(玉溪)계곡이라 되어 있으며 포천구곡은 포천계곡 초입 대실 부락에서 약3km지점 법전1리 법림교인 1곡부터 신계리 만귀정이 있는 제9곡 홍개동 까지 약 7km에 걸쳐서 포천구곡이 있습니다. 포천구곡 제9곡인 홍개동 만귀정 폭포 만귀정 제6곡인 조연 제4곡인 포천 2011. 3. 23. 벌들이 사라집니다.! 언제 부터인지 우리 주변에서 나비가 사라져 가고 이젠 벌들의 무리도 줄어들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얼마전 언론 에서도 지구상에 매년 약 10% 정도의 벌들이 원인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참 심각하지 않을수 없네요. 애지리농원 야생화 온실에 심겨진 할미꽃 에서 매년 씨를 받아 번식을 해왔는데 매년 결실되는 할미꽃 수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네요. 숫꽃과 암꽃의 꽃가루로 씨받이를 하는 식물들의 결실과 번식에 문제가 생긴다면 연쇄적으로 생태계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 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갑니다. 벌이 여왕벌을 따라 분봉한 광경 입니다. 숫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뭍혀주고 있습니다. 2011. 3. 22. 워 낭 워낭소리 라는 영화로 인해 워낭이 그래도 요즈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끼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산에다 풀어놓고 소를 먹일때 소 목에 달린 워낭소리가 소 위치를 파악할수 있었고 외양간의 워낭소리는 왠지 푸근함과 뿌듯함을 느끼게해주곤 했는데 언제 부턴가 소들의 목에는 워낭이 사라져 갔습니다. 산에 풀을 띁어 먹일 일도 우마차를 끌 일도 외양간에 매일 일도 없어지고 오직 사람의 입으로 들어 가기위한 먹거리의 용도로만 키워지고 있으니까요. 옛날 어르신들이 소 요롱소리 나도록 움직여 일하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2011. 3. 20. 다듬이 방망이 풀먹인 천이나 빨래를 다듬이 돌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들겨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던 다듬이 방망이로 아낙네 들이 양손에 쥐고 일정한 속도로 두들기는 다듬이 소리가 고요하고 잔잔한 새볔녁이나 밤중에 들릴때는 때론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려오던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2011. 3. 20. 말갈퀴 연못이나 웅덩이에 자라는 수생식물인 먹을수 있는수초를 건져내는 도구로 보통 경상도 지방에선 말을 건지는 연장 이라고 부르는데 줄 끝을 쥐고 멀리던져서 잡아 당기면 갈퀴에 수초가 걸려 반찬을 해먹곤 했는데 요즈음에는 거의 사라져 버린 도구 입니다. 2011. 3. 20. 실 감개틀 실 타래를 감아놓고 손으로 돌려서 실을 감는 도구로 집에서 만들어서 사용하던 아주 투박한 기구로 그래도 상당히 능률적으로 실이 감겨져 꽤나 도움이 되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2011. 3. 20. 성주이씨영정(星州李氏 影幀) 이 장경(李 長庚)과 자손의 13점의 영정이 문화재로 등록 되어 있는데 봉안된 영정은 원위(元位)에 이장경(李長庚) 배향(配享)에 이백년(李百年).이천년(李千年).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상 4위의 영정은 임진왜란때 왜적이 훔쳐가고 위패만봉안),이조년(李兆年). 종사(從祀)에 이인기(李麟起).이승경(李承慶). 이원구(李元具).이인복(李仁復).이인임(李仁任). 이인민(李仁敏).이숭인(李崇仁).이직(李稷). 이제(李濟).이사후(李師厚).이지활(李智活). 이조(李晁).이욱(李稶).이광적(李光迪)으로 이인기.이인복.이인임.이 조.는 영정을 잃어 버리고 위패만 봉안 했으며 이 조년의 아들 이포(1287~1373)는 1372년 (공민왕21년)에 왕이 직접 영정을 그려 준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려사.. 2011. 3. 20. 안산영당(安山影堂) 안산서원(安山書院)은 원래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지금의 태봉에 농서군 이장경(李長庚)의 묘소앞에 있었던 제실과 영각을 1438년 왕가의 태실(胎室)을 쓰면서 이장경의 묘소와 함계 옮겨져서 이곳에 안산서원 이라 하여 이 장경과 그 자손의 영정(影幀)은 영각(影閣)에 모시고 유림이 춘추(春秋)정일(丁日)에 향사 했고 1680년( 숙종6년 )에 사액 되었으나 대원군때 철폐되어 안산영당(安山影堂)이라고 개칭 하였다. 벽진면 자산리 41번지에 옮겨진 안산영당 에는 영당 남쪽아래 농서군공 이장경 신도비가 있으며 원래 성주이씨 영정은 대가면 옥화리198번지 오현재에 옮겨 보관 하고 있으며 이곳 영당에는 성주이씨 영정을 다시그려 봉안하고 있는데 영당은 정면 3칸 측면2칸 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중기이후 영당 의 .. 2011. 3. 20. 성주 추원당(追遠堂) 초전.문덕리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에 소재한 추원당은 효종 7년에 처음 창건한 건물로 고려말 경기감사(京機監司)를 지낸 송구(宋構)를 위시한 야성송씨의 여러 선조의 묘제를 목적으로 건립한 문중제사(門中齊舍) 건물로 경북 문화재자료 43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위치는 벽진 초전간 군도 4호선 에서 700m지점. 2011. 3. 20. 성밖숲(제5경) 성주읍 경산리 446-1번지외 18 필지로 이루어진 성밖숲은 성주읍성 밖에 만들어 졌다고 성밖숲이라 부르는데 현재 300~500년생 왕버들 나무 57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이곳의 공간은 성주군민들의 사회적 활동과 정신문화의 재현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裨補林)으로 향토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 행사공간으로 주민들의 산책 운동. 아이들의 소풍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는 성주민 들에겐 아주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 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1999년 4월6일자로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403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2011. 3. 20. 세종대왕 왕자태실(제6경) 월항면 인촌리 산 8번지에 소재한 세종(世宗)대왕 왕자태실(王子胎室) 로 1438년(세종20년)에서 1442년(세종24년)까지 4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태실로 이곳에는 19기의 왕자 태실이 모셔져 있으며 1975년 12월 30 일자로 지방유형문화재 제 88호에 지정 되었다가 2003년 3월 6일자로 국가지정 사적 444호로 승격 지정 되었습니다. 여름철의 태실모습 겨울철의 태실모습 건너 선석사에서 바라본 태실 태봉 어산지(池)에서 바라본 태실 태봉 2011. 3. 20. 한개마을 돌담길(제7경) 왠지 정겹게 느껴지고 포근함이 와 닿는 돌담길 입니다. 월항 한개 민속마을 골목길의 흙으로 쌓은 돌흙담길 풍경이 성주7경에 선정 되었습니다. 2011. 3. 19. 이전 1 ··· 179 180 181 182 183 184 185 ··· 1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