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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국립공원에는/구석.구석 알아야 할곳33

사명대사 부도탑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 뒷편 언덕에 외로이 놓여있는 석종형의 부도가 유명한 사명대사의 부도탑이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곳은 홍제암에서도 보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아무런 표지석이나 안내문도 보이지 않는다. 부도탑의 높이를 재어보니 1.8m 에 둘레는 3.3m에 이른다. 부도탑에도 아무런 표시가 되어있지않아 부도탑만 놓고 보면은 누구의 부도탑인지 정말 알수가 없을거같다. 아래에 세워져있는 사명대사 석장비가 왜경으로부터 파괴의 수난을 겪어 부도탑 만큼은 피해를 면하기 위하여 사명대사의 부도탑임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한다. 이곳 사명대사 부도탑비에서 내려다보는 홍제암의 뒤편의 경관과 용성스님의 탑비 가을 풍광은 운치를 한층 더해준다. 사명대사 부도탑 부도탑 오르는길 부도탑에서 내려다본 석장비 뒷모.. 2018. 12. 10.
팔만대장경각의 또다른 발견 지난 9월25일날 찿았던 해인사 팔만대장경각 여러차례 찿았던 곳이건만 근래에는 안에는 관람이 금지되었다가 명절기간 개방을 해놓아 오랬만에 안.밖을 둘러볼수있는 기회를 얻어 우리 가족은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의 이전에는 발견치 못했던 부분들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팔만대장경 편액은 조선말에 정상품 통정대부를지낸 회산 박기돈(晦山 朴基敦 1873~1948) 글씨 팔만대장경각 담장 출입문을 기준으로 좌측 대장경각 출입문을 기준으로 우측 9월 25일 오후 3시20분쯤 비춰진 그림자. 대장경각의 앞쪽 (남향)의 상.하 창의 크기비율 윗창이 아래 창보다 작다. 뒷쪽 (북향)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적다 사간전 건물(이곳은 사간판(寺刊板)을 보관하는 건물 뒤쪽 큰 건물은 법보전건물이며 앞쪽 작은 건물은 사간전건물 사간전 건물.. 2018. 11. 30.
최치원의 차운시(次韻詩)와 석문(石文) 고운 최치원의 차운시는 수십여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곳 가야산 홍류계곡에는 수많은 바위에 석각이 새겨져 있다. 매표소가있는 홍류문을 지나면 계곡 건너편에 농산정이 보이며 농산정 맞은편 농산정 석주옆에 하교(下敎) 남여(藍轝) 필파(筆罷)라는 특이한 석문(石文)이 있고 석주 바닥에는 초서로 써 내려간 최치원의 차운시 두편이 바닥에 누워있다. * 차운시(次韻詩)란 - 남이 지은 시운을 따서 지은시를 말한다, 둔세시(遯世詩)- 최치원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미친물 바위치며 산을 울리어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말도 분간 못하네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행여나 세상시비 귀에 들릴까.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흐르는 물시켜 산을 감쌌네 홍류계곡 초입에 새겨진 하교(下敎).. 2018. 9. 11.
가야산 해인사에는 3 개의 석주(石柱)가 있다. 가야산국립공원 해인사에는 3개의 석주(돌기둥)가 있는데 탐방객 대부분 관심의 대상이 아닌듯싶다. 국보급도.보물도.그리고 문화재에도 속하지 않음도 일반 탐방객의 시선이 멈추지않고 지나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개의 석주는 원표라 음각된 원표석이 일주문 앞에 서있고 룸비니동산 입구에 서있는 사자문석주. 그리고 농산정 건너편 도로변에 세워놓은 농산정석주. 이 세개의 석주의 공통점은 세워진 년도가 같다. 불기 2956년(서기1929년) 세운이는 각각 새겨져 있는데 동일인 인지는 아직 밝혀진 기록은 없다. 세곳에 세워놓은 석주를 찿아본다. 일주문 앞 원표석과 당간지주 원표석 상단에 "원표"라 사각기둥 사면에 음각 농산정석주 * 농산정 건너편 도로변에 세워놓은 석주로 불기 2956년 9월 이라 새겨 놓았다. .. 2018.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