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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충청도49

의좋은 형제비 (충남.예산) 1964년도에서 2002년까지 당시 국민학교 또는 초등학교에 다녔던 세대들은 2학년 2학기 국어책에 실렸던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밤중에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자신의 벼를 몰래 나르다 서로 만나는 내용이 담겼던 이야기 당시에도 이것이 실화일까? 늘 궁금증을 가졌었다. 충남 보령 성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서해 아산만으로 유입되어 가다 잠시 머무르는 곳이 충남 예산의 예당 저수지다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되며 수몰되었다가 1978년 극심한 가뭄으로 예당 저수지의 물이 빠지면서 효제비가 발견되며 실제 존재 인물로 밝혀지게 된다. 현재 동헌 앞의 효제비는 원래 예당저수지 수역 개뱅이(가방교) 다리 옆에 있던걸 1978년도에 이곳 동헌 앞으로 옮겨 보호각을 설.. 2024. 2. 19.
대흥동헌및 아문 (충남.예산) 충남 예산군 대흥 동헌은 뒤로는 봉수산(484m.)이 있으며 앞으로는 규모가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예당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예당 저수지의 이름은 예산군과 당진시의 앞머리 글자를 따 예당저수지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이 예산군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면 이지만 유일하게 옛 동헌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옆에는 대흥면 행정복지쎈터가 접하고 있고 동헌 안에는 화령옹주 태실비와 태함 그리고 대원군 척화비도 세워져 있다. 밖으로는 역사를 말해주는 200년 이상된 느티나무와 의좋은 형제 효제비각과 비를 만날 수 있다. 2024.2.18 대흥동헌 (충남 유형문화재 제174호) 동헌 아문 과 느티나무 화령옹주 태실비와태함(왼쪽) . 대원군 척사비 (오른쪽) 대원군척사비 * 비문(한자) 내용은 양이침범(洋.. 2024. 2. 19.
성삼문선생 유허지.유허비(충남.홍성) 2023.4.16 매화의 지조와 대나무의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알려진 사육신의 한 분이었던 성삼문 선생(1418~1456)의 유허지가 최영장군 사당 바로 이웃 노은리에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유허지를 찿았다. 최영장군과 성삼문 선생 출생지가 두 분 다 이곳 홍북면 노은리가 되는 셈이다. 이곳은 성삼문 선생 외조부인 박담 고택이 있던 곳으로 성삼문 선생은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삼문 선생을 세종(1418~1450) 때 집현전 학자였고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자이며 단종 폐위 사건 때 굳은 절개로서 목숨을 잃어버린 사육신의 한 분 정도로만 알고 있다. 유허비의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이 썼다고 한다. 1691년(숙종 18)에 신원과 관직이 복구되며 1758년(영조 34)에.. 2023. 5. 18.
최영장군사당(충남.홍성) 2023.4.16 충남 홍성군 일원 천주교 성지 순례 중 홍성군 홍북면 대인리에 위치한 최영장군 사당을 들렸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당은 현판에 기봉사(奇峰祠)란 현판이 걸려 있다. 최영장군(1316~1388)에 대하여 알아보자. 태어난 곳이 바로 이웃마을 홍북면 노은리로 73세 때 개경에서 이성계에 의하여 참형을 당하며 생을 마친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며 최영은 내가 탐욕이 있었다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내가 결백하다면 내 무덤에서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최영장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모셔져 있는데 실제로 묘봉에 풀이 나지 않아 적분(赤墳)이라 불렀으며 최근 (1976년도) 후손들의 사초(莎草) 이후 풀이 돋아나 있다고 한다. 최영장군의 묘는 경기도 기념.. 2023.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