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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전라도

다산초당(茶山艸堂) 전남.강진

by 애지리 2019. 6. 19.

지역의 단체인 성주향토사연구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두차례 문화유적답사여행.

이번엔 다산 정 약용(1762~1836)의 자취가 스며있는 전남 강진을 다녀왔다.

먼저 찿은곳은 다산이 귀양살이 18년중 10년(1808~1818)의 세월을 보냈다는 다산초당을

다산이 다산초당서 백련사에 거처했던 해남 대둔사 승려 혜장(惠藏)선사(1772-1811)를

만나기위해 오르내렸던 동백나무 숲길 약 800m 거리를 걸어 유명한

 "목민심서"(牧民心書) 의 탄생지 다산초당(茶山艸堂)의 뜰에 올라

 다산 정약용의 초상화앞에 서본다.

2019.6.8

 

 

다산초당(사적 107호)

* 본래 이 건물은 다산초당 아래 귤동마을에 살던 해남윤씨 집안의 귤림처사 윤단의

산정이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어머니는 해남윤씨의 윤두서의 손녀이며 윤두서는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된다. 윤두서의 셋째아들 윤덕령의 딸이 다산의

어머니가되며 따라서 윤두서는 다산의 외증조이며 고산 윤선도는 외가로 6대조가 된다.

후손인 윤단의 아들 윤문거 세형제가 다산을 이 다산초당으로 초빙 했다고한다.

이 건물은 원래 초가집 이었으나 1957년 강진유족보존회에서 목조와가로 중건 하였다.

다산초당 현판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친필을 집자(集字)해서 모각(模刻) 하였다고 한다.

* 집자(集字)란- 평소의 글씨를 한자 한자 추려서 짜맞춘 글씨.

* 모각(模刻)이란- 보고 그대로 본떠 새기는거.

 

정석 암각글씨 바위에서 내려다본 다산초당

다산초당에 모셔진 다산 정 약용 초상화

 

다산동암(茶山東菴)

다산은 신유박해때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사건 연루혐의로 귀양와서 주로 이곳

동암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하며 목민심서등 이곳에서 집필에 몰두 하였다고한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와의 인연은 1776년 15세때 풍산홍씨와 혼인을 하며

이승훈(李承薰)이 매형 이었으며 큰형수의 아우인 이벽(李璧)과 사귀었고 이가환(李家煥)

등과도 교류를 하며 이벽으로부터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황사영은 정약현의 사위로 정약용의 조카 사위가된다.

* 황사영(1775~1801) 백서 사건이란- 1801년(순조1) 신유박해때 천주교신자 황사영이 중국 로마

카톨릭교회 북경교구의 주교에게 혹독한 박해를받는 조선 교회의 전말보고와 그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를 말한다.

* 신유박해때 정약종.이가환.이승환은 죽임을 당했고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과

다산은 귀양 유배되었다.

*이승훈(1756~1801):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

*이 벽(1754~1785): 정약현 처남

*이가환(1742~1801): 형조판서역임

 

 

다산동암현판

정약용의 친필을 집자해서 새긴것이라한다.

보정산방현판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것으로 보정산방이란

정약용을 보배롭게 모시는 산방의 의미라 한다.

동암옆에 세워진 송풍암비

이비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들이 쓴것으로 짐작 한다고함.

(국립공원발간 "꿈과 전설이 하나되는 월출산")

연지 석가산

* 다산초당에는 다산4경이라하여 제1경은 초당뒷편 바위에 새겨놓은 정석(丁石)이란

암각 글씨와 암각바위옆의 다산이 마시던 샘물의 약천. 송방울을 태워 차를 달였다는

앞마당 넓적한 바위인 다조. 초당옆의 연못 연지석가산. 연못 맞은편엔

고기를 바라본다는 뜻의 관어제(觀魚齊)란 현판이 걸려있다.

관어제란 현판

천일각

다산초당서 백련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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