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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남이포와 입암(경북.영양.英陽))

by 애지리 2022. 4. 7.

이곳은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공을 세운 조선 초기 장군인 

남이(南怡) 1441~1468  장군과 관련되어 지명과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왼쪽 동천서 내려오는 물과 오른쪽 반변천서 내려오는 물이 합류되는 지점을 

남이포라 부르며 가운데에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를  남이정이라 부른다.

일찍이 병조판서에 올랐지만 27세에 생을 마감한 기구한 운명의 인물인 남이장군은

본관은 의령으로 서울(한양)에서 태어났으며 할머니가 태종대왕의 넷째 딸인 정선 공주로

남이장군은 태종의 외증손이 되는 셈이다.

당시에 좌의정이었던 권남희 사위로 조선시대 충무공이란 시호를 가진이가

9명이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다.

위치: 경북 영양군 입암면 203

남이포

* 왼편 동천 방향으로 조금 가면 원당리 석문 정영방의 서석지가 있으며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영양 산촌박물관으로 갈 수 있다.

  남이포 맞은편엔 도로변에 우뚝 서있는 선바위(立岩)를 볼 수 있다.

* 남이 장군은 병조참지(兵曺參知) 유자광(柳子光)의 모함으로 능지처사에 처해지고

  그 뒤 3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1818(순조 18) 년 관직이 복구되며 창녕 구봉 서원 

  서울 성동의 충민사에 배향되어 있다.

* 당시 야사에 의하면 남이가 지은 한시의 3행을 고쳐 역적으로 모함하여 억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네.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 한다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여기서 3행 남아 이십 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의 평평할 평(平) 자를 얻를 득(得)으로

고쳐 모함하였다고 전해진다. 

* 이곳 말고도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고 남이섬 이란 지명으로 불려지는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이 

  있는데 사실은 가묘일 뿐이고 행정상의 진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지에

  위치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쌍분 묘라 한다.

  남이섬은 1960년대부터 관광지로 개발되어 "겨울연가"(2002년)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선바위(立巖)

선바위와 남이정

영양. 쌍계 입암(雙溪立巖) 겸재. 정선 그림 - 간송미술관 소장

등림영회도(登臨詠懷圖). 북관 유적 도첩(北關遺蹟圖帖)에 실린 남이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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