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성당들이 주변 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자리를 잡건만 이곳 계산 성당은
낮은 지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옆에는 매일신문사와 접해있고 바로 맞은편에는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 대구 제일 교회와
마주 보고 있다. 또한 이곳은 박 태준 시인의 "동무생각"의 첫 구절 봄의 "고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의 청라언덕이 위치한 곳이다.
이곳이 대구 그리스도 역사의 출발점이며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뒤쪽으로는 1907년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徐相敦 1851~1913)의
생가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상화(尙火) 이상화(李相和 1901~1943) 시인의 생가도
이곳에 있다.
본당 신설은 1885년 제7대 조선대목구장 마리장퀴스타브 블랑(한국명:백규삼) 주교가 대구 본당을 신설하며
초대 본당 주임신부는 프랑스 아킬레바오로 로베트(한국명:김보록 1853~1922) 신부가 부임된다.
1886년 조불통상조약 후 1888년 칠곡 신나무골과 죽전 새방골(현 대구 서구 상리동)로 옮겨와
3년간 은신하여 전교하다 현재의 계산성당으로 옮겨와 사목을 하게 되며 1911년 대구대목구가 설정되며
주교좌성당으로 결정. 최근에 신축된 범어대성당(대구. 수성구)과 같이 주교좌성당이 된다.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마리아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 2가 71-1 번지)
계산성당 전면
* 현재의 건물은 1901년에 착공하여 1902년 5월에 준공한 쌍탑 고딕식 건물이며
1903년 11월 1일(모든 성인의 날)에 제8대 교구장이었던 귀스타브샤를마리뮈텔(Gustave-Charles-
Marie Mutel 프랑스어) 한국명 (민덕효.閔德孝 1854~1933) 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2 개의 종탑의 종은 서상돈(아우구스티노)과 정규옥의 부인 김젤마나 기증하여 종의 명칭을
아우구스티노. 젤마나로 명명 하였다고 한다.
첫 건물은 1899년 한식 십자형 기와집으로 건축되었는데 축성 40일 만에 (1900.2.4)에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이때가 본당 설립 14년째 되는 해였다고 한다.
계산성당 표지석( 입구 오른쪽)
* 현재의 서양식 성당 건물이 영남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점으로 1981년 9월 25일 자로 사적 290호 지정.
* 지금의 건물은 1918년 12월 24일 증축 공사가 이루어졌고
1992년 8월 14일 대보수 공사가 완료되어 이때 지부 함석이 동판으로 교체되었고
실내 바닥이 목재에서 대리석으로. 창호 스테인글라스 공사 시 이때 한국 순교자들과 4대
복음사가를 스테인드 글라스에 추가하였다.
* 제대 하단부 중앙에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신부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주교좌의자
초대 본당신부 김보록 신부 흉상(성당 입구오른쪽 화단)
한국 순교자 스테인드글라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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