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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생활 전시관 농민신문소개 성주애지리문화농원 농경생활 전시관이 농민신문 (2010.10.22)에 소개 되었습니다. 농민신문은 농협중앙회에서 격일로 발간하는 정기간행 신문으로 주로 전국 농촌 농민과 농업관련 기관 단체에 유료로 보급 되고있는 농업 정보 신문 입니다. 매회 발행부수는 30만부 정도 발행하고 있답니다. 2010. 12. 20.
꽈리꽃 꽈리 꽃보다 빨간 껍질안에 들어있는 빨간 열매에 더 추억과 낭만을 느꼈던 식물 이지요. 꽈리꽃은 여러해 살이 풀로 빨간 껍질 부분은 꽃받침이 자란것이고 열매는 먹을수도 있습니다. 열매안에 씨를 빼내면 꽈리를 만들수 있는데 꽈리 불기는 소녀들이 즐기던 놀이였지요 빨갛게 익은 꽈리를 따서 껍질이 터지지 않게 손으로 비벼 눌러 가면서 물렁물렁하게 만든 다음 탱자나무나 아카시아나무 가시로 꼭지부분에 구멍을 뚫어 씨를 빼낸다음 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앞니 끝으로 살짝 눌러주면 뽀드득 소리가 납니다. "꽈리에 관한 동요에도" 빤간꽈리 잎에 물고 뽀드득 뽀드득 동글 동글 굴리다가 뽀드득 뽀드득 복사에 물을 주다 뽀드득 뽀드득 가지과로 6월에서 7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한번 심으면 매년 새싹이 올라와 꽃을 피워 열매를.. 2010. 12. 19.
감 꽃 감꽃은 주로 5월에 피는데 꽃이라는 개념보다 감이라는 열매를 먼저 생각하게 합니다. 먹을수 있는 꽃중에 감꽃.진달래.아카시아 꽃을 그래도 가장 많이 따먹던 기억이 생각 납니다. 감꽃을 "감또개" 또는 '감또가리"라고 부르면서 어린이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감꽃이 떨어지는 감나무 밑으로 달려가 짚푸라기나 끈으로 감꽃 꿰미를 만들어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면서 이긴쪽이 상대방 감꽃을 한개씩 빼먹는 놀이도 그 시절엔 하나의 놀이 었지요. 지금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 되지만 그런데 그 시절엔 낭만적인 놀이라기 보다 5월의 긴긴해에 보릿고개 계절이라 배고픔과 군것질을 달래기위해 떫고 텁텁한 감꽃을 주워 먹었으리라.생각 되네요. 이영도의 "보릿고개"라는 시가 그시절의 정경을.. 2010. 12. 19.
낮 달맞이꽃 달맞이 꽃이라 그러면 밤에 피어 달을 맞이하는 꽃이라고 하는데 낮 달맞이 꽃은 낮에 꽃이 핀다고 낮 달맞이 꽃이지요 꽃은 늦봄부터 늦은 가을 까지 계속 피고 지고 하면서 번식력도 왕성한 편입니다. 전체가 아주작은 애기 달맞이꽃도 있습니다. 달맞이꽃은 바늘꽃과로 두해살이 풀로 살아 갑니다. 2010. 12. 18.
물양귀비 꽃이 양귀비를 닮았고 물에 산다해서 물양귀비라 하지요 열대지역 연못이나 늪에서 퍼져 자라는여러해살이 풀 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연못이나 화분에 심어 가꾸며 뿌리는 진흙속에 있고 잎은 물위에 떠서 자랍니다 포기 나누기나 씨로도 번식이 가능하답니다 양귀비 과로 꽃은 7월에서 9월 까지 물위로 꽃을 피우지요. 2010. 12. 18.
인동꽃차(금은화)만들기 인동초는 낮은 산의 숲속이나 풀밭에서 잘 자라는풀로 꽃을 채취 할때는 꽃이 피기직전 따는것이 가장 적기 이지요. 이때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전인데 노란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곧 시들어 버린답니다. 다른 꽃차는 대부분 채취하여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말리거나 쪄서 말리는데 인동꽃은 그늘에서 빠른 시간에 말려 밀봉 보관 해놓았다 차로 끓여 먹으면 됩니다. 꽃을 채취 할때는 도로변이나 전답 주변에는 매연과 제초제 살포 우려성이 있으니 가급적 산속깊은 곳 에서 채취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위 사진의 인동꽃은 노란 빛깔이 많다는 것 은 채취 시기가 좀 늦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애지리 야생화 온실에서 채취하여 건조중이며 다 건조시켜 소쿠리에 담아 마지막 마무리 건조 광경 입니다. 인동꽃은 인후염.편도선염.대.. 2010. 12. 18.
공포의 구제역 구제역이니 광우병이니 옛날엔 없었던 생소한 용어가 이젠 귀에 익을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서해안 어부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가 난리가 났고 육지의 농부들에겐 구제역으로 한반도가 꽤나 시끄럽습니다. 갈라진 발굽을 가진 동물들의 신세가 아니 운명이 말이 아닙니다. 따라서 축산 농장주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그심정 헤아릴수가 없겠지요. 우리들의 기억엔 지난시절 소규모로 순환 농법에 의해 소먹이던 시절엔 이런일이 없었던것 같은데 이젠 규모가 크다보니 피해도 큽니다. 빨리 방제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축산인들의 아픔이 멈추어 지길 기원 합니다. (아래사진은 지금도 재래방법으로 소죽을 가마솥에 끓여 키우는 한우입니다) 2010. 12. 17.
담배 건조장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경 입니다. 담배를 재배해서 수확하여 건조 시켰던 담배 건조장인데 올봄에 아주 깊은 골짝 마을에 갔다가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아 봤습니다. 지붕도 여러번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아주 정겹게 보이네요. 황토벽에 지붕은 기와에다 스레트로 땜방을 많이도 했네요. 거기다가 바람에 날릴까봐 세멘 벽돌까지 눌러 놓았네요. 한때는 농가에서 담배를 재배하여 농가 수익에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젠 수입 연초에 밀려 담배밭 구경 하기가 힘든 시절이 되어 버렸습니다. 건강에는 도움이 안되는 작물 이었지만 담배잎을 따서 짚으로 엮어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던 광경도 시골 풍경에서 볼만한 전경 이었는데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2010. 12. 17.
홍개동(洪開洞)포천구곡 제구곡 아홉구비 홍개동 한 하늘이 열렸네 백년을 아껴둔 이 산천일쎄 새로이 정자지어 몸을 누이니 속세가 아니로세 별천지로세. 길이 15m 폭4m 깊이3m 정도의 사각형 수조(水槽)모양의 웅덩이 동쪽방향 절벽에는 구이폭(九二瀑) 제일계산(第一溪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만귀정폭포 폭10m 높이 7m 정도로 한말 名 宰相 이 짓고 은둔한 晩歸亭에서 유래 제9곡 홍개동(洪開洞) 에는 포천구곡을 경영한 응와(凝窩)이원조(李源祚)의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곳으로 주변도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다. 제9곡 홍개동은 7곡에서는 2.4KM거리이며 제1곡에서는 7KM거리 만귀정은 조선후기 공조판서를 지낸 응와 이원조(1792~1871)가 만년(1851)년에 귀향해 독서와 자연 을 벗삼으며 여생을 보낸곳으로 그래서 정자 이름.. 2010. 12. 16.
자목련꽃 100 여년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낙엽교목 으로 목련과로 4월에서 5월쯤 꽃이 피며 개화전에 꽃봉오리를 채취하여 축농증 이나 비염에 약재로 쓰여 지는데 구사맹(具思孟)1531~1604)의 팔곡집(八谷集)에 북향화(北向花)란 시에 나오는 꽃을 해남(海南)의 동헌(東軒)뜰에 한그루의 나무가 있어 꽃 색깔은 자색이고 꽃 모양은 좁고 길며 향기가 강열 하였는데 그 꽃을 북향화라 하였다 하는데 그 꽃이 자목련을 칭하는 거라 했다. 2010. 12. 16.
세종대왕 왕자태실 태실의 위치는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 8 번지에 있으며 1975년 12월 30일자로 지방 유형문화제 제88호로지정되었다가 2003년도 3월 6일자로 국가지정 제444호로 승격 지정 되었슴 세종20년(1438년)에서 세종24년까지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왕손 단종(端宗)등 20 여기의태실이 안치 되었는데 세조(世祖)가 단종의 왕위찬탈이 있은뒤인1457 년(세조3년) 단종 복위에 연류된 금성대군등 다수의 태석(胎石)과 태비(胎는 산아래로 파헤쳐 굴러지고 13기만 남았다. 1975년 보수때 일부태석은 산아래에서 찿아 복원했고 세조의 태석을 알리는 예조판서 홍윤성(洪允成)이 쓴 비문(碑文)은 세조의 잘못을 미워하는 백성이 비석의 글을 매끈하게 깍아 알아볼수 없다.그곳에서 출토된 분청인화문(粉靑印花紋) .. 2010. 12. 15.
백세각(白世閣)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42번지에 있는 백세각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163호로 지정된 곳으로 1919년 3 .1 운동 당시 송준필을 위시한 그 문인들이 성주 장날이 서는날에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보관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성주의 유학자들은 3.1운동 .제1.2차 유림단 사건 등에 항일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주도적인 역활을 한 사람이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과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으로서 1919년 3월1일 성주에서도 만세운동이 3월27일 선남을 시작으로 가천면 동원리를 거쳐 4월2일 성주 장날에는 대대적인 만세 시위가 벌어 졌는데 공산은 "사생은 천명이다. 나라가 회복되면 죽더라도 사는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않으면 살더라도 죽은 것이다" 라고 선언한후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으며 만세.. 2010.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