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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리농원 주변문화는.57

가야산심원사(深源寺)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에 소재한 심원사는 발굴조사에의해 300~400년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심원사가 거의 복원이 끝나가고 있고 마지막까지 심원사를 지켜왔던 삼층석탑은 1989년 복원하여 현재 자리에 안치 했다고함.(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심원사는 백운동 집단시설 주차장 뒷편 심원골 300m지점 해발600m쯤 에위치하고 있으며 심원사 입구에는 고 김건영 전 성주군수님의 망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만물상 에서 바라본 심원사 전경 입니다. 2011. 2. 1.
심산기념관(心山紀念館) 독립지사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선생을 기리기위해 1972년도에 성주읍 경산리 현 성주군청 뒷편에 대지 340평 건평 74평의 기념관과 기념관 뜰에 김창숙 선생 사적비가 이 인기(李寅基)의 글.도 이석(都利碩)의 글씨로 1974년도에 세워 졌습니다. 비신의 높이는 1.75m.너비는 65cm.두께는 39cm 2011. 2. 1.
동강 김 우옹(東岡 金宇옹)선생 신도비.산소 성주사람들은 양강(兩岡)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양강은 동강 김우옹 선생과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을 칭하지요. 두분은 같은 시대에 태어나 (동강1540년생.한강1543년생) 후세 사람들은 이 두분을 근세조선중엽 이후 성주의 대표 인물로 치는데 동강 선생은 대가면 칠봉동 사도실(思道谷)에서 태어났고 한강 선생은 대가면 칠봉동 유촌(柳村)에서 태어나 두분다 대가면에서 태어나 큰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현재 대가면을 대가(大家)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동강 선생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숙부(肅夫).호는 동강(東岡)으로 1540년(중종35년)태어나서 1558년(명종13년) 19살에 진사가 되었고 1567년(명종22년)28세때 별시문과 을과(乙科)로 급제 1572년(선조5년) 홍문관정자로 입.. 2011. 1. 28.
동제(洞祭)바위 (성주.금수) 성주군 금수면 봉두리 안새출 부락 입구에 소재한 동제바위는 30번 국도변에 성주호 와 접해 있으며 바위 높이는 4m정도 가로5m 세로3m정도로 장방형 모양. 동제바위란 이름은 마을 주민들이 동제를 지낸데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바위위의 소나무는 수령이 200~300년으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추정하는데 척박한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생명력이 신기할 따름이다. 성주댐과 30호 국도가 확장 포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커다란 조산(造山*돌무더기)이 있었는데 조산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중기쯤 이마을 이씨성을 가진 사람이 동래부사로 제수받아 재직시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공적비 까지 세워주고 세상을 떠나자 이곳으로 장지를 정했는데 산세가 너무 악해 산소 쓸 자리에 축대를 쌓아야 될 돌이 없어 고.. 2011. 1. 23.
돈재 이석문(李碩文)신도비(성주.월항) 성주.월항.대산리 한개부락 북비고택 맞은편에 는 돈재 이 석문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자는 사실.호는 돈재.본관은 성산. 월봉정현의 후손으로 이신(李紳)의 아들로 한개 에서 출생 하였으며 1739년(영조15년),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762년(영조38년),휘령전(徽寧殿)에 왕을 호종하여 간신(諫臣)을 불러들이고 세손(世孫:뒤의 정조임금)을 업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구명을 꾀하다가 벼슬에서 쫓겨나 고향 집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대문을 내고 대궐을 향하여 매일 새벽 재배(再拜)하니 사람들은 그를 북비공(北扉公)이라 불렀다고하며 정조(正祖)때에 문숙공 채 제공(文肅公 蔡濟恭)으로 인하여 그 손자 규진(奎鎭)이 왕을 입시하니 "너의 조부의 세운 공이 참으로 갸륵하다'고 하고 돌아간 후 병조참판.. 2011. 1. 19.
성주한개마을 한주종택(寒洲宗宅)성주.월항 경북.성주군.월항면.대산리 408번지에 소재한 한주종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건물은 조선 영조(英祖)43년(1767)때 이민검 이 건립하고 고종3년 (1866)성리학자 이진상(李震相)이 새로 고쳐지어 지금의 집은 그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집의 구조는 한주정사(寒洲程舍) 정자가 있는 구역과 안채.사랑채로 이루어져 대문은 동향이며 정자와 사잇담을 두고 작은 협문과 일각문을 내어 출입을 하고있다. 한주정사 정자 한주종택 사랑채 한주종택 안채 한주(寒洲)이 진상(1818~1885)은 성주.월항면 한개마을 출신으로 자는 여뢰(汝雷),호는 한주(寒洲),본관은 성산(星山)으로 월봉 정현(月峰 廷賢)의 후손으로 이 원호(李 源祜)의 아들로 숙부인 응화 이원조 에게 수학하여 .. 2011. 1. 19.
성주한개마을 하회댁(河回宅.성주.월항) 아래 건물 하회댁(河回宅)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1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 제 326호로 지정되어 있고 진주목사 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터를 잡은 한개마을 중심에 위치한 조선후기 양반 주택이다 현 거주자의 조부가 구입하여 그 자손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정확한 건립 연대나 내력은 알수 없으나 1630년대의 건물로 추정 하고 있으며 택호(宅號)는 소유자의 부인이 안동 하회(河回)에서 시집온데서 연유 되었으며 이건물은 영취산을 배경으로 백천(白川)과 이천(伊川)을 바라보고 있으며 안채.사랑채.고방채.중문채.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정침이 흙담으로 분할되어 남녀 공간 구분이 확실하며 그 사이에 협문을 내어 내외를 연결 시키고 있다. 한개 마을의 다른 가옥처럼 남부지역 반가의 .. 2011. 1. 6.
성주한개마을 북비고택(北扉古宅.성주.월항) 경북 민속자료 제44호로 지정된 북비고택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안채.사랑채.안사랑채.사당.대문채.북비.북비채 로 이루어진 이가옥은 조선초기 성산 이씨가 한개에 입향할 당시 종택이던 대초당(大草堂)을 경종(景宗)1년(1721)에 처사(處士) 이이신 이 매입하여 오늘날의 터전을 잡은 가옥이다.영조(英祖)때의 무신(武臣)으로 병조참판에 증직된 그의아들 이석문(李碩文)이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북쪽으로 사립문을 낸 뒤부터 북비댁(北扉宅)으로 불렸다. 그뒤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사헌부 장령(章令)을 지낸 이석문의 손자 이규진(李奎鎭)이 순조(純祖)21년(1821) 에 정침을 중건하고 종일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공조판서를 지낸 그의아들 정헌공(定憲公)이.. 2011. 1. 6.
한개마을 흙돌담길(성주.월항)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부락은 고풍스런 한옥과 아름다운 돌담길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 자료로 지정되었고 돌담길은 아름다운 성주팔경에 선정되었습니다.아래사진은 한개마을 흙돌담길 풍경입니다. 2011. 1. 5.
감응사.感應寺(성주.월항) 감응사 사찰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주 선남에서 월항간 도로에서 2km 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감응사 사찰 주차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부터는 도보로 걸어서 약0.4km 가면 감응사가 나타 납니다. 이 절은 처음에는 감응암(感應庵)이란 암자 였으며 감응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 보조국사 체징이 왕명에 의하여 창건한 절로서 1740년 (영조16년) 에 중수 1780년에 (정조4년) 에 또 중수 1921년에 다시 중수 현재 대웅전(정면3칸).칠성각.봉래당.건물이 있다. 왕자의 눈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는 옥류정이 절뒤 절벽에 있다. 감응사 대웅전 감응사입구 진입로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에서 바라본 감응사 전경 2011. 1. 4.
선석사(禪石寺.성주.월항)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217 번지에 위치한 사찰로 (1985 년8 월 5 일자로 문화재 자료 제113호로지정 신라 효소왕 1 년(692) 의상대사가 창건한절로 고려 말엽에 지금의 절로 옮겼으나 임진왜란때 불타고 1684 년(숙종 10 년)에 은현,혜묵.나헌 대사등이 다시 세웠다. 1725 년(영조1년)에 서쪽으로 옮겼다가 1804년 (순조4년)동파,서윤. 대사가 현위치로 다시옮겨 신광사(神光寺:1832년도 펴낸 성주 목읍지에 佛字란에 선석사는 북쪽 30리에 있는데 이제 신광사라 한다고 되어있음)라 했다가 뒤에 다시 선석사로 했다. (星州의脈 文化財總攬 上卷 참조) 세종대왕의 왕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 경내에 최근에 아기의 탄생을 축복하며아기의 건강을 기원하는 태실 법당이 건립 되었습니다 건너편 태.. 2010. 12. 23.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 세종대왕 왕자 태실을 명당중에 명당 이라 그러고 길지라고 그래서 멀리서 태봉을 바라 보았습니다. 태실 건너편 선석사 앞에서 바라본 태실이 있는 태봉 봉우리 입니다. 인촌池 에서 바라본 태봉(중앙 봉우리가 왕자 태가 뭍혀있는 태실임.) 원래 이곳 태봉자리는 문열공 이장경(李長庚)의 묘소였는데 명당터로 알려져 묘는 대가면 옥화리로 이장 되었다고 합니다, (星州의脈 文化財 總攬 上卷 참조) 2010.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