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민속자료 제44호로 지정된 북비고택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안채.사랑채.안사랑채.사당.대문채.북비.북비채 로
이루어진 이가옥은 조선초기 성산 이씨가 한개에
입향할 당시 종택이던 대초당(大草堂)을 경종(景宗)1년(1721)에
처사(處士) 이이신 이 매입하여 오늘날의
터전을 잡은 가옥이다.영조(英祖)때의 무신(武臣)으로
병조참판에 증직된 그의아들 이석문(李碩文)이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북쪽으로 사립문을 낸 뒤부터 북비댁(北扉宅)으로 불렸다.
그뒤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사헌부 장령(章令)을 지낸
이석문의 손자 이규진(李奎鎭)이 순조(純祖)21년(1821)
에 정침을 중건하고 종일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공조판서를 지낸 그의아들 정헌공(定憲公)이원조(李源祚)가
고종3년 (1866)에 기존 건물을 개축하고
폐허가 된 북비채를 중건하여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다.
충절과 문한이 면면히 이어온 이 가옥은 현재
정면 6칸인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안사랑채.사당.
북비댁등 5채로 구성되어잇고북비채는 별도의 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원래 북비채에 있었던 장판각 1채와 안대문채.아래채.사랑앞 마당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없어진 안대문채는 중문간채.방앗간.
고방등으로 이루어진 6칸으로 안채 맞은편남쪽에 있었다하며
아래채는 안채에 동향하여 배치되어 있었다 한다.
집의 명칭이 북비인것은 북비란 현판이 걸린
사립문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영조임금의 아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이석문 이 1774년에 터를 잡은 곳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위험에처하자
이를 잘못된것이라 간 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여
낙향하여 지금의 터에 집을 세우고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이곳에서 은거하며 지냈는데 이때부터 북비고택이라
불리어 졌으며 최근에 소설 북비가 발간되었는데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 북비고택을 지은 이 석문 이다
곧 드라마 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한다.
북비고택의 안채
북비고택의 안 사랑채
사랑채 마루
밖에서 본 북비고택
북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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