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519

성종대왕 태실 서울 창경궁 풍기대와 춘당지 사이에 조선시대 제9대 임금 성종대왕(1457~1495) 태실이 홀로서 위치하고 있는데 경기도 광주에 있던 태실을 이곳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자와 공주의 태(胎)를 백자 항아리에 담아 태지석(胎誌石)과 함께 명당에 묻고 주로 불가의 승탑 모양으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경북 성주에는 규모가 가장 큰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 사적 444호로 지정되어 관리 보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종 태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1 (창경궁로 185) * 성종의 릉(선릉)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삼성동 131) * 성종은 1457년(세조 3년) 덕종의 둘째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에 즉위하여 25년(1469~1495) 재위한.. 2021. 12. 22.
해인사 길상암 가야산 홍류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소리길 덕분으로 예전에는 가까이 접할 수 없었던 계곡의 진가를 볼 수 있음에 늘 감사를 해보며 또한 소리길을 가다보면 그 앞을 지나야 만 하는 길상암이 사실은 가야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찰임에도 경사진 비탈진 곳에 자리를 하고 있어 그리 많은 사람들이 가깝게 찿지 않는 거 같다. 길상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보궁 까지를 오랜만에 다시 한번 올라본다. * 길상암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2년 영암 스님께서 창건하였다고 하며 대웅전 본존불은 아미타불이다. * 길상암에는 36과의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석가세존 진신사리 봉안 도량으로 또한 이곳에서 성철 스님의 제자인 명진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며 명진 스님은 1982년부터 1984년.. 2021. 12. 20.
청계서원(경남.함양) 경남 함양 남계서원을 찾았다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청계 서원을 들려본다. 서원 앞 마당 노송이 인상적이다. 남계서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참 아담하다고 느껴진다. 청계 서원은 경남 문화재자료 56호로 지정 되었고 남계서원은 사적 제499호이니 격이 좀 다르다. 청계 서원은 문민공 김일손(1464~1498)을 기리기 위한 서원으로 김종직 제자로서 남을 다스리는 정치 치인(治人)으로 즉 사장(詞章)을 중시한 조선 연산군 때 학자로 조의제문(弔義弟文) 사건에 연루되어 무오사화로 훈구파에 의해 능지처참을 당하게 된다. 이후 중종 반정 때 복관 되며 순조 때에 이조판서로 추증된다. 1495년도에 청계 청사를 세워 유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1905년도에 유림들이 유허비를 세워 주었으며 1915년도에는 건물을 고.. 2021. 10. 2.
남계서원(경남.함양)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은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백운동서원)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 사액된 서원으로 1566년(명종 21)에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1552년(명종 7)에 일두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개암 강익을 중심으로 창건되어 남계라는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남계"라는 이름은 서원 앞에 흐르는 시내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고 하며 1597년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도(선조 36)에 사촌으로 옮겼다가 1612년(광해군 4)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남계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이 된 47개 서원중 하나로 경남 유일의 존속서원이다. *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 서원. 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 2021. 9. 24.
지안재를 다녀오다(경남.함양) 지난 9월 14일 아침부터 비가 내려 아는 지인이 경남 함양 조망공원에서 지리산 마고 예술제 행사가 있어 다녀왔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선 2004년도에 개통된 지안재를 경유하여 오도산을 넘어간다. 경남 함양에서 마천면으로 넘어가는 1023번 지방도 함양과 지리산을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이 길로는 처음이다. 행정구역상 위치는 경남 함양읍 구룡리 산 119-3번지 높이는 370m 지안재라는 이름은 蹄閑峙(제한치)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가파른 고갯길에 말발굽도 쉬어 간다는 뜻이라 하건만 자동차로는 단숨에 올라와 짧다는 느낌에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 길이 함양에서 지리산으로 가는 가장 단거리 코스로 지안재를 경유하면 높이 772m의 오도재 가 있고 마천면 소재지를 지나 그 유명한 한국의 3대 계.. 2021. 9. 19.
복수초의 군락지 가산 지난 3월 21일 날 세계 최대의 복수초 서식지라는 경북 칠곡군의 가산산성 4.6km를 걸어 올라 시간 관계상 동문 까지만 갔다가 기대한 광경은 보지 못하고 군락지까지 가지 못해 작년에이어 또 잔뜩 아쉬움만 남기고 발길을 돌려왔다. 동문 가기전 복수초 분포 규모가 비교적 적은 복수초 서식지에서 사진 몇장 담아봤다. 가산산성 가산산성 동문 * 옛 전쟁 격전지였던 곳에서 땅속에 묻힌 탄피를 찾아내는 사람인데 용도와 목적을 물어보니 그냥 취미로 한다고 한다. 2021. 3. 27.
한티 억새마을(경북.칠곡)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1815년 을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시절 쫃기고 쫓기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터전. 억새로 이엉을 엮어 비를 가리고 살다가 결국은 처형당하고 마을은 불에 태워지는 수난을 겪으며 목숨을 잃은 무명 순교자가 잠들어 있는 이곳에 옛 억새 마을을 복원시켜 당시의 천주교 신자들의 슬픈 역사의 삶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근래에 19세기 종교박해시기에 한티 성지로 향하던 순례자의 길을 모티브로 왜관 낙산 가실성당에서 이곳 한티성지까지 총 45.6km의 장거리 트레킹 길 "한티 가는 길"의 마지막 종점 이기도 하다. 2021. 3. 22.
선산읍성 남문 낙남루(善山邑城 南門 落南樓) 조선조 500년 동안 선산 도호부와 선산군의 관문이었던 선산 읍성은 고려말에 토성으로 축조 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석성으로 고쳐 축조하였다는 기록에 의하면 둘레가 1448척. 높이가 9척으로 동서남북 4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2002년에 남문인 낙남루와 일부 석성만 복원하여 놓았다. 옛 1척의 길이는 고구려 때에는 35cm. 고려때는 31cm. 조선 세종 때 교정된 영조척은 30.8cm. 였으며 일제 강점기 때에는 1척을 30.303cm. 로 통일하여 일본이 사용하던 곡척으로 사용 하였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 쓰인 자는 5종류로 다섯 종류는 용도에 따라 정해 졌으며 길이도 달랐다고 한다. 황종척은 악기에. 주척은 도로 길이. 영조척은 건물. 조례 기척은 제사용 도구에 표백척은 옷감 길이에 적용하.. 2021. 3. 16.
낙화담(落花潭) 경북.칠곡 백제 의자왕 때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부여 낙화암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 경북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의 낙화담은 좀 생소한 곳이다. 이곳 또한 시대만 다를 뿐 비슷한 사연을 간직 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마을 여인들이 왜병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꽃잎처럼 몸을 던진 절벽이라 하여 낙화담(落花潭) 이라 한다. 지금은 낙화담 아래에는 제방을 막아 지천지 저수지를 조성 해 놓았다. 2021. 3. 16.
심원정(心遠亭) 경북.칠곡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유학자인 기헌(寄軒) 조병선(曺秉善) 1873~1956) 선생이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앞에 위치한 계곡의 한 모퉁이에 1937년에 주변을 다듬고 나무를 심어 원림을 조성하였다는 심원정(心遠亭)을 찾았더니 문이 잠겨 계곡 건너편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정자 이름 심원정은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음주(飮酒 ) 20수 중에서 제5수의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에서 따온 것으로 "마음이 초원해지니 땅은 저절로 외떨어진다네"라는 뜻이라고 한다. 정자 안의 실명에서도 마루의 이 열당(怡悅堂)은 "편히 즐기다"에서 누각 정운루(停雲樓)는 "친구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모두 도연명의 시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 원림(園林)이란-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자신의.. 2021. 3. 12.
법수사지 당간지주(경북.성주) 10년 만에 다시 찾아본 법수 사지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87호인 당간지주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다. 처음 찾는 분은 조금은 어려울 거 같은데 별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지 관리 관청에서도 관심이 없다. 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정말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당간지주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그 사찰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의 당간지주는 현재 백운리 중기 부락 아래쪽에 위치하며 법수 사지 3층 석탑(보물 1656호)이 세워져 있는 축대에서 약 100 m 거리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당(幢)을 매달아 당간(幢竿)을 세우는 간대석(竿臺石). 그리고 간대석 앞에 배례석(拜禮石)이 고목나무에 박혀 있다. 주소: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 2021. 3. 1.
세심정(洗心亭) 경북.칠곡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세심정(洗心亭)은 같은 이름으로 전국에 여러 개가 아직도 남아 당시의 주인공들의 역사와 문화를 말해준다. 이곳은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심천 2리 1500년경 광주 이 씨(廣州李氏) 칠곡 입양 조 승사랑이지(李摯) 공의 차자 이인부(李仁符)가 구례 현감으로 재직 중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정암 조광조 등 유신들이 화를 입고 조정이 혼탁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상지(웃갓)의 경지당(敬止棠)으로 돌아와 건령산(建靈山)에는 금낙정(琴洛亭)을 세우고 사창(司倉)의 개울가에는 세심정(洗心亭)을 지었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년)에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300여 년이 지난 1936년 후손들이 송추(松楸) 묘소 가까운 심천 2리에 다시 재건하였다고 한다. 주소: 경북 칠곡군 지천면.. 2021.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