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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성주읍성복원 (경북.성주)

by 애지리 2020. 9. 11.

지방자치제가 시행 되면서 지역의 정체성 확보와 관광자원개발이란 명목으로

읍성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성주도 복원이 진행 되고 있는 읍성을 찿아 봤다.

북문 복원과 비석을 옮겨와 비석원이 만들어 지고 있으며. 아직 진행중이라

북문 루각의 현판도 안 걸렸는지 아니면 아직 미공개인지 흰 천으로 가려져 있다.

읍성의 기능은 고을의 주민보호를 위해 관부(官府)와 민거(民居)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으로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가짐으로서 내부에는 주로 관아.병영.관청.향교.장터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성주읍성북문 바깥쪽

 * 읍성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전국적으로 300 여개의 읍성이 있었고

  읍성이란 용어는 조선때부터 쓰여 졌다고 한다.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읍성중에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은

  충남 해미읍성. 전북 고창읍성. 전남 낙안읍성 정도다.

읍성북문 안쪽

* 성주 읍성과 연관된 역사는 성주여자 중.고등학교 정문 맞은편에 세워놓은

  쌍충사적비로 성주성전투(임진왜란)시 공을세운 성주목사 제말과

  정유재란 때 진주성을 지원하다 전사한 조카 제홍록(諸弘祿)의 공을 기리기 위해

  1792(정조)년 성주성과 진주성에 쌍충사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석원

*  안쪽방향 북문 바로 입구에는 충헌각(忠獻閣)이라는 수명유허비각 하나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비각은 영의정을 역임했던 김창집(金昌集)의 비각으로

  김창집은 좌의정 김상헌(金想憲)의 증손인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로

  신임사화(1721~1722) 때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곳에서 유명을 달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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