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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기도36

창덕궁 (서울) 조선 500년의 수도였고 현재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5개의 궁궐이 있는 궁궐의 도시라 할 수 있다. 5개의 궁궐 중 유일하게 1997년에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가 되었다.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궁궐 곳곳에 스며있을 사연과 문화를 몇 시간 만에 어찌 이해 할수 있겠냐만 교과서에서 보았던 어설픈 지식 이나마 더듬어보며 창덕궁의 관문인 돈화문을 들어서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들어서며 창덕궁의 진면목을 들여다 본다. 진선문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 기념비 금천교 * 금천교는 쌍무지개 다리로 한양 건설을 도맡았던 박 자청이 설계하고 시공한 명작이라 한다. 궁궐에 남아있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라 한다. 인정문(仁政門) 인정전(仁政殿) * 창덕궁 인정전은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 2022. 3. 14.
창덕궁 후원 겨울은 책 속의 사진에서만 보았던 창덕궁 후원을 애지리의 셋 째인 리가 예약하여 갑작스럽게 한파가 몰아친 황량한 엄동에 답사를 하게되어 추위 때문에 아무래도 좀더 여유를 가진 답사가 되지 못해 빠진 지역은 다음을 기약해본다. 창덕궁 후원은 사적 122호로 면적이 10만 3천 평 정도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다. 조선 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 조원(造苑)으로 우리나라 조원 문화(造苑文化)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정원으로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 은 일제 때 사용한 용어라 한다. 이곳에는 인공적인 관상수는 심지 않았고 나무 전지(前枝)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75년 조사 기록에 의하면 수령 300년 이상 된 나무가 느티.. 2021. 12. 24.
창경궁 식물원 온실 일제에 의해서 황실의 위안 시설을 건립한다는 명목으로 세웠다는 창경궁의 온실은 현재의 모습은 1969년 식물원 개원 60주년 때 이중 돔식으로 개조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당초에는 1909년(융희3) 에 창경원 식물원이란 명칭이 붙여지며 11월 1일 날 개원을 하면서 이때 창경원 식물원이 한국 최초의 식물원 이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 1907년 학교 교육을 목적으로 수원농림전문학교(현 서울대 농과대학)에 나무를 식재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그 당시에는 온실 면적이 575.04 평방미터(약 174평) 목조 유리 건물로 동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1991년 기준으로 한국식물원 연합회에 등록된 식물원은 총 33개가 등록되었다고 한다. 2021.12.17 2021. 12. 23.
성종대왕 태실 서울 창경궁 풍기대와 춘당지 사이에 조선시대 제9대 임금 성종대왕(1457~1495) 태실이 홀로서 위치하고 있는데 경기도 광주에 있던 태실을 이곳 창경궁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자와 공주의 태(胎)를 백자 항아리에 담아 태지석(胎誌石)과 함께 명당에 묻고 주로 불가의 승탑 모양으로 장식하였다고 한다. 경북 성주에는 규모가 가장 큰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 사적 444호로 지정되어 관리 보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성종 태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2-1 (창경궁로 185) * 성종의 릉(선릉)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삼성동 131) * 성종은 1457년(세조 3년) 덕종의 둘째로 태어나 예종의 뒤를 이어 1469년 13세에 즉위하여 25년(1469~1495) 재위한.. 2021.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