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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국립공원에는95

가야산 석조여래입상(石造如來立像)보물264호 이 석조여래입상은 가야산 18경인 봉천대 가기전에 탐방로에서 오른쪽 약50 여m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상왕봉 까지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발품을 팔지 않으면 갈수 없는 곳 입니다. 보물 제264호인 이 석조여래입상은 얼굴 신체의 양강 그리고 옷 주름에서 통일 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이 엿 보이기는 하나 균형을 잃은 경직된자세 평면적이고 소극적인 조각수법등 형식화 경향이 현저한 여래상이다. 제작시기는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2016. 1. 4.
가야산(伽倻山)유상곡수(流觴曲水) 가야산 해인사나 팔만대장경전을 갈려면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을 통과 해야 되는데 일주문 들어 가기전 오른쪽 공터에 보면 돌로 설치된 둥근 도랑같은 구조물이 방치 되어 있어 해인사를 찿을때마다 표지판도 없고 가야산 해인사 관련 책자에도 기록이없어 궁굼하던차에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해인지 2015년(불기2559년.단기4348년) 6월(400호) 뒷표지에 실려있어 올려봅니다. * 1625년 가야산과 유람한 뒤 남긴 허돈의 "유가야산기"에 유상곡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눈썹이 진하고 흰 머리의 늙은 승려가 나와 말머리에서 인사를 하엿다. 일주문을 통하여 들어 갔는데.일주문 위에는 석천(石泉)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깍아 빙 돌아가게 하여.. 2016. 1. 4.
사명대사 석장비(四溟大師 石藏碑)가야산.해인사(보물1301호) 이 비석은 임진왜란때 승장으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1612년에 건립 되었다가 1943년에 일본인이 깨트린 것을 1958년에 다시 복원 한 것으로 이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석학 허균이 지었으며 광해군 2년에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는 익호(謚號)를 내리고 이곳 홍제암에 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라 이 암자를 홍제암 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2015. 10. 3.
부도(浮屠)가야산.해인사 부도는 승녀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을 말 하는데 또한 승탑.사리탑.부두.포도(蒲圖).불도(佛圖) 라고도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가기전 오른편 백련암. 지족암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좌측 길과 접하고 있는 사리탑 입니다. 2015.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