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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국립공원에는/가야산에 사찰은12

해인사.대적광전(大寂光殿) 한 사찰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主佛)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찰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Vairocana)에서 온 말로서 영원한 법(法) 곧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大寂光土)의 역활을 하고있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주인 순응 스님과 이정 스님이 802년에 지은 건물 .. 2016. 2. 18.
해인사(海印寺) 해인사(海印寺)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서 팔만대장경이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150여 개의 말사(末寺)를 거느리고 있다. 불교의 삼보사찰 중 법보(法寶) 사찰로 유명하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남북국 시대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1]이 창건했다.[2] 그들은 가야산에 초막을 세우고 참선을 했는데 등창으로 고생하던 애장왕의 왕비의 병을 낫게 해주어 애장왕이 절을 창건하도록 했다. 순응과 이정 이후 ‘결언대덕’이란 승려가 사찰 창건을 계속했고 주지가 되었다.[3] 918년에는 승통희랑[4]이라는 당시 해인사 주지가 고려를 도와준 .. 2016. 2. 17.
해인사 가는길 가야산 홍류동 계곡을 왼쪽으로 끼고 송림으로 둘러쌓인 진입로로 가다보면 옛 가야산국립공원 사무실 못미쳐 좌측 도로변에 해인성지(海印聖地)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가야산을 찿는이에게 가장 먼저 반겨주는데 여기 음각된 글씨는 성철스님 휘호 입니다. 아래 홍류문(紅流門)은 첫 통과의례가 시작 되는 곳 입니다. 그리고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입장료를 줘야만 통과 되는 곳이기도 하지요. 아래 사진은 큰 절에 들어설 때마다 처음 만나는 문 일주문(一柱門) 입니다. 절의 어귀에 서 있는제일문(第一門)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成佛)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하겠다.일주문은 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문을 지탱하고 있는 건축구조에서 그 이.. 2016. 2. 15.
가야산 사찰(청량사淸凉寺)) 천년고찰 청량사는 그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말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857~?)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한동안 폐사가 되었던 것을 1811년에 회은(晦隱)스님이 중수하였고 최근에 이르러 경암(景庵)스님이 다시 중건 하였는데 지금 또다시 큰 불사를 일으켜 새로이 단장 하고있다. 신라때의 고찰인 청량사는 보물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보이는 여래좌상과 삼층석탑.석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황산리 매화산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의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최치원조에 이 절은 최치원(857~?)이 즐겨 찾던 곳이라.. 2016.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