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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사지4

법수사지 당간지주(경북.성주) 10년 만에 다시 찾아본 법수 사지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87호인 당간지주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다. 처음 찾는 분은 조금은 어려울 거 같은데 별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지 관리 관청에서도 관심이 없다. 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정말 답답함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당간지주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그 사찰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의 당간지주는 현재 백운리 중기 부락 아래쪽에 위치하며 법수 사지 3층 석탑(보물 1656호)이 세워져 있는 축대에서 약 100 m 거리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당(幢)을 매달아 당간(幢竿)을 세우는 간대석(竿臺石). 그리고 간대석 앞에 배례석(拜禮石)이 고목나무에 박혀 있다. 주소: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 2021. 3. 1.
용기골.만물상의 초봄 가야산에 다녀온지 일주일만에 다시 가야상 용기골과 만물상을 찿았다. 4월3일 초봄의 가야산 용기골에도 이름모를 묘지가에 얼레지가 자태를 뽑내고 있고 바위 사이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꽃을 피워준 별꽃과 얼레지도 보인다. 8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한송이의 꽃을 피울수있고 두개의 잎을 만들어낼수있는 얼레지를 볼때마다.애틋함을 느낀다. 만물상엔 갈때마다 새로운 모양의 바위를 발견하곤한다. 여러번 눈길을 줬어도 보이지않던 모양이 어느날 우연찬게 어떤 형상을 닮은 바위덩어리를 찿아내곤 할때는 묘한 희열도 느낀다. 오늘은 정말 아주 잘생긴 옆모습의 사람 얼굴상을 발견했다 살며시 감은눈 잘생긴 코. 적당한 인지와 턱까지 비례와 조화도 . . 2018.4.3 오래된 무덤이라 보여지는 산소가에 핀 얼레지 바위 사이.. 2018. 4. 15.
가야산 폐사지.伽倻山 廢寺址.(일요암지.법수사지.용기사지.백운리사지) 가야산에는 법수사가 창건(802년) 되면서 여기에 따른 부속 암자 터가 일요암(日曜庵).백운암(白雲庵).도은암(道恩庵).보현암(普賢庵).미타암(彌陀庵)과 법수사지. 용기사지가 있으며 도은암에 대한 기록은 성산지(星山誌)에 나오고 미타암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다고 한다.(상생의땅 가야산. 깊은솔 발행) 일요암지(日曜庵址) 일요암은 고려 말 송천우가 창건 하였다고 하며 가야산에 있다는거 외에는 별 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4단의 석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건물지로 추정되는 주초석의 흔적은 찿을수 없으며 그 자리에는 현재 육정신장(六丁神將)으로 불리는 민간신앙의 흔적이 남아있다.. * 이곳은 입산이 금지된 지역으로 국립공원 직원의 현지 안내와 해설을 도움 받아 답사를 .. 2016. 1. 13.
통일신라거찰(巨刹)법수사지(法水寺址) 수륜.백운리 법수사는 당초 절 이름을 금당사(金塘寺)라고 하여 802년(신라애장왕3년)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白雲洞) 중기(中基)마을과 그 주변 일대를 차지하여 지은 신라의 거찰로 가야산을 중심으로한 성주지방 불교의 진원지로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敬順王)의 작은왕자 범공(梵空)이 중이되어 금당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고려중엽에 절 이름을 법수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고 조선조 중엽에 폐사가 된 절로 절터 중앙에 그 뒤 마을이 생겨 중기라 불리어 졌습니다. 가야산 남쪽에 위치한 이 법수사는 구금당(九金堂),팔종각(八鐘閣)등 1000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하며 법수사에 딸린 암자(庵子)만도 100 개가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백운동 곳곳에 암자터를 발견할수 있는데 암자는 도은암(道恩庵),보현암(普賢庵),백운.. 2011.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