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지리농원 주변문화는.

통일신라거찰(巨刹)법수사지(法水寺址) 수륜.백운리

by 애지리 2011. 3. 8.

법수사는 당초 절 이름을 금당사(金塘寺)라고 하여
802년(신라애장왕3년)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白雲洞)
중기(中基)마을과 그 주변 일대를 차지하여 지은
신라의 거찰로 가야산을 중심으로한 성주지방 불교의
진원지로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敬順王)의 작은왕자
범공(梵空)이 중이되어 금당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고려중엽에 절 이름을 법수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고 조선조 중엽에 폐사가 된 절로
절터 중앙에 그 뒤 마을이 생겨 중기라 불리어 졌습니다.
가야산 남쪽에 위치한 이 법수사는 구금당(九金堂),팔종각(八鐘閣)등
1000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하며
법수사에 딸린 암자(庵子)만도 100 개가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백운동 곳곳에 암자터를 발견할수 있는데
암자는 도은암(道恩庵),보현암(普賢庵),백운암(白雲庵),
일요암(日曜庵)등 말로만 전해지고 있으며
법수사에 있던 불상은 절이 망한뒤에 절뒤쪽 용기사(龍起寺)로
옮겼다가 용기사가 폐사되자1897년(고종광무1년) 당시의 해인사 주지
범운선사(梵雲禪師)가 해인사의 큰법당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옮겨 안치하였는데 이것이 해인사 주존불인
비로차나불(卑盧遮那佛)로
은행나무로서 만든 좌상으로 높이는 2.35m 이다.


법수사지는 성주읍에서 고령방면 33번 국도로
수륜면에와서 가야 해인사 합천방향 59번 국도를 이용
백운동 중기마을 뒷편 59번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음.
(2009 . 12 .)

 

성주 출신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 형재(亨齋)이직(李稷)이남긴 시

등법수사남루(登法水寺南樓)법수사남루에올라

 예전에 한번 오른적이 있고
오늘 다행히 거듭 오른다

두손 마주잡고 읍을 함은
기이한 경관이 모여 있기 때문이요

쉬이 떠나지 못하고 주저함은
고의(古意)가 깊기 때문이네
시냇물은 돌 절벽에 놀라고

빗(雨)기운은 먼 멧부리에서
 나온다
뜻이 통하는 스님 친구가 있어서
근심이 있을때 더불어
시를 읊조릴 만하네.

  



법수사지 3층석탑은 신라식 일반형,화강암으로 전체가조성 2개의 기단
3층 탑신으로 되어 있으며 하대중석(下臺中石)에 안상(眼象)이 조각,
우석(隅石)이 있는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4장.중석받침 몰딩이 있다.
중대석(中坮石)은 탱주(撑柱)가 있으며 양옆에는 우주(隅柱)가 있고
갑석부연(甲石副椽)이 조각된 상대갑석(上臺甲石)이 있으며
탑신부의 옥신(屋身)은 우주가 양각(陽刻)되어 있다.
옥개(屋蓋)의 받침은 각 층 5단으로 되어 있으며
전각(轉角)은 반전(反轉)되었다. 낙수면(落水面)은 비교적 완만.
3층 옥개석(屋蓋石)은 한쪽 모서리가 깨어졌고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만 깨어져 있고 탑 놑이는 6 m

법수사지 3층 석탑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4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75년 12월 30일자로 지방 유형 문화재
86호로 지정 되었고 최근에 다시 보물 1626호로 지정 되었음

법수사지 축대
법수사지 에서 내려다본 중기(中基)부락 전경.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