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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최씨담(崔氏潭) 경북.김천

by 애지리 2020. 1. 2.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방초정 정각 앞에 있는 연못을 최씨담이라 부른다.

경상도 읍지에 의하면 최씨담이 이곳이라는 설과 상원리 남쪽 산 밑에

있었던 못 이라기도 한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연못 이름이 특이하게 최씨담으로 불리어지게 된 유래는 방초 이정복의 처 화순최씨가

당시 16세의 동갑내기로 이정복과 혼인하여 신행길에 약 40리 거리인 친정 양천동에서

시가인 원터 마을로 오던중 임진란으로 왜병에게 쫃기다가 정절을 지키기위해

투신한 못으로 이후 이 연못을 최씨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방초 이정복은 호조판서를 지낸 이숙기(1429~1489)의 5세손으로

  이곳 원터 마을은 이숙기의 차남 이세칙 때 정착한 마을이다.

* 이숙기 - 조선시대 세조때 이시애의 난 을 토벌한 공으로 적개공신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짐.

2019.12.30

최씨담과 방초정 전경

* 이 연못은 화순최씨의 정절에 대한 전설을 간직한 반면

  국내 지당중 섬을 둘로 배치하는 형태의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 정원을

  유구하고 있으며 연못의 위치가 마을과 감천 사이에 놓여있어 마을 오수나 유출수를

  여과 처리할 수 있는 수질정화 씨스템의 생태 환경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이정복의 호 방초(芳草)의 뜻은 "꽃다운풀"로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의 등황학루(登黃鶴樓)의 시

  첫 구절 "꽃다운 풀"은 앵무주에 무성 하도다에서 따 왔다고 한다.

화순최씨 정려비각(和順崔氏旌閭碑閣)

* 방초정 옆에 서있는 작은 건물안에는

절부부호군이정복처  증숙부인화순최씨지려(節婦副護軍李廷馥妻  贈淑夫人和順崔氏之閭)라는

비석이 서있다. 정절을 지키려다 숨진 이정복의 처 화순최씨에게 1632년도에 임금(인조10)의

어필정려문이 내려져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 되어졌다.

어필정려문은 정려각 안에 걸려있다.

* 부호군(副護軍)이란 벼슬은 종사품이며 숙부인(淑夫人)은 당상관(정삼품)이상의

  벼슬을 가진 아내에게 내려주던 봉직이다.

* 당상관(堂上官)이란- 조선시대 관직 가운데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책임을 갖는 정3품 이상의 자리로 조정에서 정사를 논할때 당(堂)위(上)에 올라

  앉을 수 있는 관직 이라는 뜻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세종 때에는 당상관이 100명 정도에 달했고 통상적으로 통상대부 이상의 벼슬

  참의.참지.도승지.좌승지.우승지.대사간.대사성 등의 이상 관직이다.

 

 

정려각 안 화순최씨비

 

풍기진씨열행비각(豊基秦氏烈行碑閣)

* 화순최씨정려비각 옆에 나란이 있는 비각으로 이정복의 후손인 연안이씨

이기영에게 출가한 풍기진씨 진희태의 딸이 1935년 남편인 이기영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1935년 24세 때에 남편이 죽은 방에서 굶어 죽자 전국 유림에서 애도문.

제문이 이어지며 1937년 3월에 정려비를 세워 줬다고 한다.

(영남상강록 충의효열지 열부편 참조)

풍기진씨 열행비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

화순최씨비각 앞에 세워놓은 비석으로

당시 화순최씨의 석이라는 노비(奴婢)도 뒤를 따라 투신하였다고 전해오다.

근래(1975년)에 연못 준설 과정에서 충노석이지비라 새겨진 비석이 발견 됨 으로서

380년만에 사실임이 뒷바침되는 비석을 정려비각 앞에 새워 놓았다고 한다.

* 충노석이비 옆에 나란이 세워놓은 돌로 자연석의 인물상 같기도 한데

  무엇을 의미 하는지는 알쏭달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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