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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유적지를 찿아(천주교)

대정성지(제주.서귀포.대정읍)

by 애지리 2023. 7. 8.

7년 전에 순례를 하였던 대정성지에 와보니 없었던 성모자상이 입구에서 순례객을 반긴다.

제주도에는 천주교라는 신앙이 알려지게 된 계기가 정난주(마리아 1773~1838)의 유배지가

제주도가 되면서 신유박해(1801년)의 사건도 알아지게 된다.

정난주(명련)의 남편인 황사영.알렉시오(1775 (영조 51)~1801(순조 1)의 백서(帛書) 사건으로 황사영은 

거혈형 사형을 당하고 배우자인 정난주는 제주도 유배. 모친(이윤혜)은 거제도 유배. 숙부(황석필)는

함경도 경흥으로 아들인 황경한은 추자도 섬에 버려지게 된다.

이때 황사영의 나이 26세였고 정난주의 나이는 28세였다. 황사영은 처숙부(정약종. 아우구스티노)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습득하여 천주교 신앙인의 길을 걸었다. 장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큰형

정약현(1751~1821)이다. 신유박해 사건에 연루된 정약전(1758~1816)은 흑산도로 다산 정약용은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고

정약종은 사형에 처해지며 순교를 하며 정난주의 아버지 정약현은 혐의가 없어 화를 면하고 이후에 전염병으로 

사망을 한다.

정난주는 제주 모슬포(현. 대정읍 보성상로 17)에서 노비로 37년 동안 살다가 1838년 66세 나이로 

생을 마치고 하느님 품에 안겼다.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0

* 신유박해 - 1801년 (순조 1)에 시파(時派). 벽파(僻派)의 정치 투쟁으로 사도세자를 반대하던 벽파가

  시파 제거를 위해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

* 백서(帛書) 사건 - 한국가톨릭교회 지도자의 한 사람인 황사영(1775~1801)이 신유박해의 전말과 그

  대응책을 흰 비단에 적어 중궁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한 천주교의 밀서

  길이 62cm. 너비 38cm. 122행에 13.384자 (한국민족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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