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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사육신 단계.하위지 묘(경북.선산)

by 애지리 2021. 1. 28.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중 하나인 사육신사건 그 중심에 한 분 이었던

단계 하위지 묘소(의관묘) 를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고방실 마을 뒤 고방산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찿을 수 있었다.

고방실 마을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 되어 있어 주차 해놓고 약 100여m 정도

걸어가니 충열공 단계하선생 묘비가 보인다. 묘지는 그렇게 호와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일반적인 봉분과 묘비에 문인석이 좌우로 서있으며 묘지는 소나무에 둘러 쌓여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사육신 사건의 배경을 더듬어 본다.

1452년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즉위하며 황보인 김종서가 실권을 장악하자

1453년 세종의 둘째 아들이며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황보인.김종서.정분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 하는데 역사는 이 때를 계유정난이라 부른다.

1455년 수양대군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여 조선 7대 세조 임금이 된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며 1456년 단종을 복위운동하던 주도자 여섯명을 처형 하게 되는데

생육신중 하나인 남효온(南孝溫)의 추강집(秋江集)에 이들 여섯명을 사육신(死六臣) 이라 칭 하게된다.

* 의관묘(衣冠墓) - 옷과 갓으로만 장례를 치르는 것

* 주소: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 10길 7-17 번지

 

단계 하위지 묘비와 봉분

 

* 단종 복위의 뜻으로 박팽년이 도롱이를 빌려준 의미의 하위지의 시

  謝人贈奢衣 (사인증사의) - 도롱이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함.

 男兒得失古유今(남아득실고유금) - 사나이의 득실을 고금이 다를게 없고

 頭上分明白日臨 (두상분명백일임) - 머리위엔 분명이 해가 비치고 있는데

 持贈奢衣應有意 (지증사의응유의) - 도롱이를 보내준 뜻 어찌 몰겠는가.

江湖烟雨好相尋 (강호연우호상심) - 강호에 묻혀 조용히 살라는 그 참뜻을

 

 

하위지 묘지의 문인석

* 사육신 성삼문의 "봉래산가"(蓬萊山歌)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 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 "봉래산가" 라는 제목은 후세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 성삼문의 絶命詩(절명시)

擊鼓催人命 (격고최인명) - 북소리 울려울려 목숨 재촉해

回首日欲斜 (회수일욕사) -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는 기울어

黃天無一店 (황천무일점) - 황천길엔 여인숙 하나 없다니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 이 밤을 뉘집에서 쉬어서 갈꼬

* 처형장에 끌려 가면서 마지막 남긴 성삼문의 절명시라 한다.

하위지 묘지 문인석

* 사육신 박 팽년의 시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단계 하위지묘지 전경

* 1457년 6월 세조는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시켜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시켜 그후 17살에 사약이 내렸지만 먹지않고

  1457년 10월24일 목이 졸려 죽음을 맞는다.

 

 단종은 죽음을 맞이하며 자규시(子規詩) 를 남긴다.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에서 쫃겨나와

외로운 몸 그림자 푸른산 헤매네.

밤마다 자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구나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어스름 달 비추고

봄 골짜기엔 피 토한 듯 낙화가 붉어라

하늘은 커 먹어서 이 하소연 못 듣는데

어찌하여 서러운 이 내 몸은 귀만 홀로 밝았는가.

묘지 바로 앞 진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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