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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두3

삽티 성지 (충남.부여) 2024.7.20삽티(揷峙)는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와 내산면 금지리 사이 경계에 있는 고개 이름으로이곳은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지가. 1752~1801) 이홍산으로 피신하여 천주교 선교활동 시절부터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다.1850년대에는 황석두(루카.1813~1866) 성인이 가족들과 삽티로 이주하여 양자인 황천일(요한). 황기원(안드레아) 와 같이 생활을 해 오다 황석두 성인은 1866년 3월30일 보령의 갈매못에서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함께 순교를 하게 된다.시신을 황천일과 황기원이 수습하여 1866년 5월에 이곳 삽티에 안장을 하였다.시신을 수습 하였다는 죄목으로 황천일. 황기원은 홍산 관아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처형이 되며두 사람의 시신은 황기원의.. 2024. 7. 27.
서짓골 성지 (충남.보령) 2024.7.13충남 보령호를 끼고도는 도로와 접하고 있는 서짓골 성지는 1866년(병인년) 3월 30일 보령 오천 갈매못 성지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5 명중 4명의 유해가 안장되었던 곳으로 안토니오 다블뤼주교. 루카 위행 신부. 베드로 오 매트르 신부. 장 주기 요셉 신부. 4위의 시신은 서짓골 신자들에 의해 9월 1일 날 이곳에 묻혔다.나머지 1위의 시신 황석두(루카)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삽티에 안장이 되었다.그로부터 16년 후인 1882년 순교자 유해 발굴 수습에 의해 유해는 일본 나가사키오우라 성당에 12년간 모셔지게 된다.그 후 1894년 서울로 유해가 모셔져 용산 신학교를 거쳐 1900년 명동성당에 모셔졌다.다시 1967년에 서울 절두산에 안장이 되었다.2016년도엔 하부 내포성지 주관으로.. 2024. 7. 27.
산막골성지 (충남.서천) 2024.7.20천주교 대전교구 산막골 성지를 찾아가는 길은 겨우 승용차 정도가 다닐 수 있는 산골 농로길을 한참 오르니 산막골 성지라는 표지석이 보인다.이곳은 충남 서천군 판교면.시초면.문산면이 걸쳐 있는 천방산(324.3m )  중턱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곳이다.산막이란 지명은 산이 장막처럼 둘러쳐져 있다는 뜻이라고 하며이곳 산막골에 황석두 (루카 1813~1866) 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하여 병인박해 전까지 10 여년동안 살았던 곳이고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폐롱 신부가 1858년부터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하였던 곳이다.천방산 자락 고개마루(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 79-1) 에는 신앙 선조의 유해가묻혀있는 줄무덤 터가 있고 이곳은 독뫼공소터와 판교 금덕.. 2024.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