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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6

2020년 가야산 가을 경남합천군과 경북성주군의 경계 지점인 59번국도변 정견대 위치에서 바라본 가야산 만물상과 최고봉인 칠불봉 용기골과 심원골의 10월 하순경 풍경 . 2020.10.26 2020.10.26 왼편으로부터 심원골. 만물상능선. 용기골 심원골 왼편 능선. 심원사 뒷방향 백운동 전경 가야산19경중 하나 길상암 뒷방향 2020. 11. 8.
백운동 심원사(深源寺) 이곳 심원사는 경북 성주군 백운리 가야산국립공원 가천분소 에서 약 300 m정도 상류에 위치하며 심원사는 원래 신라시대에 창건 되었으며 고려말 이숭인의 시에서 "심원 옛절은 가야산 속에 있는데" 라고 읆었듯이 고려시대에도 심원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 이었고 조선중기 지원화상이 크고 화려하게 중창 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 되었다고 하며 그후 여러차례 중창을 거치다가 성주군의 "국립공원 가야산지구 문화관광자원"복원 계획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고려시대의 대학자인 독곡 석성린 선생의 시와 도은 이숭인 선생도 존경하던 "심원사장로께"라는 시를 올렸고 호군 송천후가 이성계의 군사를 피해 심원사에 숨었을 때에 사문에서 이들을 교화하여 돌려보낸 고승도 주석 하였다고 합니다. * 이곳 심원사는 200.. 2016. 3. 20.
통일신라거찰(巨刹)법수사지(法水寺址) 수륜.백운리 법수사는 당초 절 이름을 금당사(金塘寺)라고 하여 802년(신라애장왕3년) 성주군 수륜면 백운동(白雲洞) 중기(中基)마을과 그 주변 일대를 차지하여 지은 신라의 거찰로 가야산을 중심으로한 성주지방 불교의 진원지로 신라가 망하자 경순왕(敬順王)의 작은왕자 범공(梵空)이 중이되어 금당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고려중엽에 절 이름을 법수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고 조선조 중엽에 폐사가 된 절로 절터 중앙에 그 뒤 마을이 생겨 중기라 불리어 졌습니다. 가야산 남쪽에 위치한 이 법수사는 구금당(九金堂),팔종각(八鐘閣)등 1000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고하며 법수사에 딸린 암자(庵子)만도 100 개가 넘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백운동 곳곳에 암자터를 발견할수 있는데 암자는 도은암(道恩庵),보현암(普賢庵),백운.. 2011. 3. 8.
중기 느티나무(성주.수륜) 성주.수륜면.백운리1196번지.중기(中基)마을 뒷편 용기골 입구에있는 노목으로 높이 14m 둘레 2.8m 뻗은 가지는 동.서.남.북.각각 12m 로 수령은 약 200년 정도로 1580년(선조13년) 경에 법수사(法水寺)에서 심은 것으로 추측하고있다. 큰 바위 사이에서 자랐으며 바위에는 벽운대(霹雲臺)라 새겨져 있는데 바위사이에서 자라서 그런지 수령에 비해 나무가 작은 편이다. 이 벽운대에서 1954년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유암 김 인식(由菴 金 仁植)을 위하여 수계(修契)하고 단(檀)을 쌓아 "벽운대"라 하였으며 대 위의 느티나무를 운수정(雲樹亭)이라 이름지어 매년 입하에 탐승(探勝)의 심정(心情)으로 회유(會遊)하니 "입하계"(立夏契)라 한다. 그리고 이 중기(中基)마을은 신라 애장왕(哀壯王)3년(80.. 201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