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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관왕묘(星州關王廟)성주.경산5리

by 애지리 2011. 3. 6.
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의 명장인
관운장(관우)을 배향하는 묘당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의 편안함을 비는 전당으로
1597년(선조30년)명나라장수 모국기(茅國器)가
성주읍 동문 밖에 세웠던 것을 1727년(영조3년)
남정 밑으로 옮기니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 큰배리로
지금은 그자리에 관운사(關雲寺)절이 세워지고 입구에는
하마비(下麻碑)가 예와 같이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관왕묘가 세워진곳이 몇군데 안되는데
서울 남대문 밖 남묘(南廟)는 1598년 명나라 장수 진인(陳寅)이 세웠으며
서울의 동묘(東廟)는 1602년(선조35년) 명장 만세덕(萬世德)이
명나라 신종(神宗)황제의 명을 받들어 세웠고
안동의 관왕묘는 1598년(선조31년)명장 설호신(薛虎臣)이 
남원의 탄보묘(誕報廟)는 1599년(선조32년)명장 유정(劉綎)이 세웠는데
일제시대때 모두 헐려 없어졌지만
성주의 관왕묘가 가장 먼저 세워 졌습니다.

*성주 관왕묘 표지석과 하마비 표지석이 있는 관운사는
현재 성주버스정류장 부근 성주여자 중.고등학교 후문 입구
왼편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이 관왕묘는 처음에 성주 동문 밖(지금종로라 부르는곳)에 세웠는데
관왕묘를 세운 자리가 내가 가깝고 땅이 낮아 홍수만 지면 수해를 입게되어
1727년(영조3년) 관운장이 당시의 성주목사에게 자리를 옮겨 주기를 
현몽하여 지금의 자리로 옴ㄹ겼다고 하며 강당을 따로지어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하고 봄에는 경칩(驚蟄)때 가을에는 상강(霜降)때
제사를 올리게 하였다고 합니다.
군신(軍神)으로 떠 받드는 관우장수가 오나라 여몽(呂蒙)의 
계략에 빠져 전사를 하게되어 그런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여(呂)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관왕묘를 참배하면
그자리에서 죽는다고 하였다며 도둑이 들면 관왕묘 안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둑질 한것을 등에 메고 밤새도록 
관왕묘 안만 맴돌다가 붙잡였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성산지,성주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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