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은 조선조 1516년(중종11년)에 원정 여선생(圓亭 呂先生)이
남전향약(藍田鄕約) 강회소(講會所)로 강당(講堂)으로 사용되었으며
원정 여 선생은(1481~1553) 휘(諱)는 희림(希臨)이요 자(字)는 대지(大之)
호(號)가 원정(圓亭)으로 37세때 중종왕자 복성군(福城君) 사부(師傅)가
되었고 선생 께서 본당 이름을 월회라고 지은것은 월일강회(月一講會)라는
넉자 말에서 따온것으로 뜻은 한달에 한번씩 이라도 모여서 향약강회를
가져야 한다는 훈계조로 만든 이름이고 누구나 참석할수 있었다고 한다.
조 정암(趙 靜菴)이 이 일을 알고 임금께 주청해서 1517년(중종12년)에
전국 팔도에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시행 하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여씨향약 이란 주자(朱子)가 남전향약을 보고 남전향약에 더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여 여씨향약 이라 하였다.
남전향약 이란 중원땅 송나라 때 남전리에 도학군자 네 형제가 살았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여대중(呂大中) 대방(大防) 대약(大約) 대림(大臨)이란
네 형제가 의논하여 네 가지의 조약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네 가지는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
환란상휼(患難相恤).이라는 덕목으로 이 조약 이름을 남전향약 이라 하였다.
남전향약(藍田鄕約) 강회소(講會所)로 강당(講堂)으로 사용되었으며
원정 여 선생은(1481~1553) 휘(諱)는 희림(希臨)이요 자(字)는 대지(大之)
호(號)가 원정(圓亭)으로 37세때 중종왕자 복성군(福城君) 사부(師傅)가
되었고 선생 께서 본당 이름을 월회라고 지은것은 월일강회(月一講會)라는
넉자 말에서 따온것으로 뜻은 한달에 한번씩 이라도 모여서 향약강회를
가져야 한다는 훈계조로 만든 이름이고 누구나 참석할수 있었다고 한다.
조 정암(趙 靜菴)이 이 일을 알고 임금께 주청해서 1517년(중종12년)에
전국 팔도에 여씨향약(呂氏鄕約)을 시행 하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여씨향약 이란 주자(朱子)가 남전향약을 보고 남전향약에 더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여 여씨향약 이라 하였다.
남전향약 이란 중원땅 송나라 때 남전리에 도학군자 네 형제가 살았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여대중(呂大中) 대방(大防) 대약(大約) 대림(大臨)이란
네 형제가 의논하여 네 가지의 조약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네 가지는
덕업상권(德業相勸).과실상규(過失相規).예속상교(禮俗相交).
환란상휼(患難相恤).이라는 덕목으로 이 조약 이름을 남전향약 이라 하였다.
월회당 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본당 건물
대문
안에는 본채건물과 아랫채 두개. 대문채.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랫채
대문채
원정 여 선생 유적비
월회당 바로 앞에 세워져 있음
월회당 안내 표지판
대문
안에는 본채건물과 아랫채 두개. 대문채.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랫채
대문채
원정 여 선생 유적비
월회당 바로 앞에 세워져 있음
월회당 안내 표지판
월회당 건너편 벽진면을 알리는 표지석
월회당은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890 의3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84년 5월21일 자로 경북도 기념물 문화재 제 48호로 지정 되었음
* 찿아가는길- 성주에서 약 7 km 지점으로 벽진.금수.무주방향 30번 국도변
벽진면 소재지 초입 삼거리 약 30m쯤 가기전 우측 (표지판 세워져있음)
월회당은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890 의3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984년 5월21일 자로 경북도 기념물 문화재 제 48호로 지정 되었음
* 찿아가는길- 성주에서 약 7 km 지점으로 벽진.금수.무주방향 30번 국도변
벽진면 소재지 초입 삼거리 약 30m쯤 가기전 우측 (표지판 세워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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