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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기도

세검정(洗劍亭)서울.종로.신영동

by 애지리 2018. 7. 27.

 애지리의 딸내미(애. 지. 리)들은 사실  서울에서 다 살아가고 있다. 부모로서는 거의 방목형이라 

자주 들르지도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도 주지 못한다.

벼르고 벼르다가 얼마전에 이사한 곳을 찾았다.

지방에 살다 보면 서울이란 곳은 늘 생소하다. 이사한 곳이 신영동 "세검정"이라 둘째가 세검정(洗劍亭)에 유래를 설명해주어

그동안 사실은 이조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음을 새삼 느껴본다.

첫째. 둘째의 안내로 집 가까이에 있는 세검정 정각 투어를 시작해본다.

* 서울시 종로구 신영동 168-6에 위치한 세검정은 서울시 기념물 4호로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하였고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던 곳으로 이곳 세검정은 총융청을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당시 총융청 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 가지은 창암 집(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년(영조 23)에

지었다고 기록.

* 부근에는 연산군이 풍류를 즐겼다는 탕춘대(蕩春臺)라는 언덕과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당간지주만이 유일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다.

 

 

세검정 정자

* 원래의 정자는 1941년에 화재로 타 버렸고 지금의 건물은 1977년에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고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T자형의 3칸 팔작지붕이다.

세검정 현판

* 세검정의 명칭에 대한 유래의 기록을 보면

* 궁궐지(宮闕志)- 에는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 김류(金流)등의 반정 인사들이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이곳에서 칼을 갈아 씻었던 곳이라 세검정.

* 동국여지비고(東國與地備攷)- 에는 열죠(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史草( 물에 씻어 흐려버림) 하였다고 한다.

* 한경지략(漢京識略)- 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 같이

되었으므로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세검정이 세워진 바위에 새겨진 각자

* 또 하나의 세검정 이름을 가진 정각이 북한 자강도 만포시 압록강 기슭에 있다가 1938년 일제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함.

세검정 정자 앞을 흐르는 계곡

* 다산 정약용은 유세 검정(遊洗劍亭)이란 시를 남겼다.

드높은 성곽이 아련히 보이는데

종일토록 계정에는 속물이 드물구나

푸른 바위 물안개에 온 숲은 젖어들고

요란한 물소리에 산봉우리는 나는 듯

그늘 짙은 시냇가에 한가로이 말 매 두고

바람 치는 주렴 창에 옷 걸어 두었네.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 있기 좋다 보니

시를 다 짓고 또 돌아감을 잊게 하네.

- 정약용 (1762~1836) 세검정에서 놀며-

세검정초등학교 담벼락에 표지석

세검정 정자 앞 표지석

세검정초등학교 부근 표지석(현 버스승강장)

세검정초등학교 담장 앞

세검정 정자 바로 뒤편

 

장의사지 당간지주(보물 235호)

현재 세검정초등학교 운동장에 위치 높이는 3.6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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