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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묘지는.

by 애지리 2019. 8. 15.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1535~1623 하면 남명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의

문인으로 경상우도의 남몀학파 대표 인물이며 북인의 대표적 인물로 인조반정때

참수형을 당한 인물로 알고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국 역사상 3걸(三傑)을 꼽는다면 을지문덕과 이순신장군.

그리고 정인홍이라 했건만 삼정승을 지낸 묘지로 보기엔 상대적으로 보는이로 하여금

너무나 초라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근래에 묘지 입구에 조그만 주차장을 공사를 하는것 같아 묘지를 찿아봤다.

2019.8.13

묘지는 아직 벌초전이라

군대군데 망초꽃이 피어있으며 풀들이 우거져있다.

가장 앞족에 망두석 2개가 세워져있고 안쪽으로 문인석 2개가 마주보고 서있다.

봉분 좌측에 세워져있는 묘비는  내암 정 인홍의 묘소를 알려주고있다.

묘 비

 내암 정인홍은 1602년에 대사헌을 역임 했으며

1612년에는 우의정. 1615년에는 좌의정.

 1618년에는 영의정에 올라 1623년에는 인조반정으로 참수형을 당하며

그후 285년후 1908년에 와서 복권이된다.

* 합천군이 정인홍의 고향이란 이유로 1629년(인조7)에 합천현으로 격하 되었다가

15년 후인 1644년(인조22)에 합천군으로 복귀 되었다.

 

문인석

* 정삼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의 무덤에만 설치했다고 한다.

정인홍이 5세때(1540) 참새를잡아 가지고 놀다가 죽게되어

어린 나이에 참새를 추도하는 제문을 지어 유명하다.

 

조사인곡(鳥死人哭)- 새가 죽어 사람이 곡하는 것은

어의불가(於義不可)- 의에는 어긋나는 일인 줄은 아노라.

여유아이사(汝由我而)- 그러나 네가 나 때문에 죽었으니

시이곡지(是以哭之)- 나는 너를 위해 슬피 우노라.

최근에 포장한 묘소 진입로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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