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족암2

해인사 암자.지족암.(知足庵) 이곳 지족암은 백련암 방향으로 올라 가다보면 왼편에 지족암 표지판이 보이는데 표지판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지족암이 나옵니다. 지족암 표지판 지족암 연혁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지족암의 옛 이름은 도솔암이며 "지족" 이라는 말은 산크리스트어 Tusita 의 음역으로 그 의미는 미륵보살의 정토 "만족시키다" 는 뜻으로 지족도솔천 이라고 합니다. 지족암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인 희랑조사가 기도하던 토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이후 한동안 본 암자가 어떻게 유지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으나 16세기에 쓰여진 "한강집"(寒岡集)의 유가야산록과 도세순의 용사일기(龍蛇日記) 17세기 창주문집의 유가야산기 등 유학자들의 문집속에 지족암을 가보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 하므로 1796년 관수(官守)스님의 중건 이전.. 2016. 1. 23.
지족암(知足庵)가야산.해인사 지족암 표지판 지족암 연혁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습니다. 지족암의 옛 이름은 도솔암이며 "지족" 이라는 말은 산크리스트어 Tusita 의 음역으로 그 의미는 미륵보살의 정토 "만족시키다" 는 뜻으로 지족도솔천 이라고 합니다. 지족암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인 희랑조사가 기도하던 토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이후 한동안 본 암자가 어떻게 유지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으나 16세기에 쓰여진 "한강집"(寒岡集)의 유가야산록과 도세순의 용사일기(龍蛇日記) 17세기 창주문집의 유가야산기 등 유학자들의 문집속에 지족암을 가보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 하므로 1796년 관수(官守)스님의 중건 이전에도 사세(寺說)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1850년에 추담장노가 주석하다 큰절로 내려간후 폐허가 되기도 하였으.. 2015.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