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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5

수도암의 가을 (경북.김천)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알려진 신라말 승려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창건하였다는 청암사의 부속 암자인 수도암(修道庵)의 가을 단풍은 자연의 위대함은 우리를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지인들이 애지리농원을 방문 할때면 가끔씩 찾는 곳이다. 대적광전 앞에서 바라보는 수도산 자락 능선 너머 맑은 날 가야산 봉우리는 볼 때마다 일품이다. 근래에는 대적광전 앞마당에 세워진 수도암 비(碑)라 불려지는 비문의 글씨가 통일 신라 명필이었던 김생(金生711~? ) 의글씨로 추측되며 잘 다듬어지지도 않은 수도암비가 이 분야 관계자 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사찰에는 늘 궁금한 것이 많다. 또한 답사 때마다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알아간다. * 도선국사 - 전남 영암출생으로 선각국사비(先覺國師碑. 전남 광양 옥룡면.. 2023. 11. 6.
해인사.대적광전(大寂光殿) 한 사찰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主佛)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찰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Vairocana)에서 온 말로서 영원한 법(法) 곧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大寂光土)의 역활을 하고있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주인 순응 스님과 이정 스님이 802년에 지은 건물 .. 2016. 2. 18.
해인사.정료대(海印寺.庭燎臺) 해인사 삼층석탑에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바라보면 작은 석조물 하나가 있다. 그 모습은 석등石燈과 유사하지만 그 모양 은석 등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해인사는 신라시대 802년(애장왕哀莊王3)에 순응, 이정이 창건하였다. 큰 법당인 대적광전은 당시 비로전이라는 2층 건물이었는데 조선시대 1488년(성종成宗19) 인수대비, 인혜 대비의 지원으로 학조學祖대사가 중창하면서 지금 의대 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왕실 원찰 기능을 담당하던 사찰로서, 큰절에 남아 있는 석조유물인 해인사 삼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길상탑, 정료대는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료대는 원래 사찰, 서원 등에서 야간 행사가 있을 때 관솔 지나 송진 등을 태워 경내를 밝히던 것으로 노주석 또는 불우리라고도 한다... 2016. 2. 9.
해인사(海印寺) 법당(法堂)과 편액(扁額) 해인사 큰법당 건물 사면에는 4개의 편액이 각각 걸려 있습니다. 정면에는 大寂光殿(대적광전) 왼쪽에는 法寶壇(법보단) 오른편에는 金剛戒壇(금강계단) 뒷쪽에는 大方廣殿(대방광전)으로 정면의 대적광전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며 왼쪽의 법보단은 해인사가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모시고있는 법보사찰 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오른쪽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계율을 받는 곳으로(授戒儀式을 치르는곳) 특별히 금강계단은 계를 지키는 마음이 금강석과 같이 굳건 하기를 원하는 의미이며 뒷쪽 대방광전은 대적광전의 다른 이름 이랍니다. 法堂(법당)은 고려 초기까지 본존불(本尊佛)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을 금당(金堂)이라 하였고 그 이후부터 본존불의 성격에 맞추어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본존불로 모시면 .. 2015.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