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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가천 포천(옥계)계곡

by 애지리 2010. 12. 23.


 포천계곡

 

포천계곡의 포천구곡은 경북성주군 가천면 법전1리 (웃법림부락) 에서
법전2리 아전촌 방향 법림교 (포천구곡중 1곡) 에서
시작되어 가천면 신계리 갈골 부락입구 만귀정(제9곡 홍개동) 까지
약7km 걸쳐 가야산 옥계계곡 상류에 만귀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가
옥계계곡의 여러풍경을 노래한 포천구곡이란 시를 지으면서
포천계곡 이란 명칭으로 불리어 진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성주의 옛모습을 기록한 경산지를 보면 이책 산천조(山川條)에
옥계의 근원이 가야산 북쪽에서 나오며 동으로 흘러
십여리를 흘러 가천과 합친다고 나와있어 옥계계곡 포천구곡 이라
칭함이 향토사학자 들의 옛기록에 의한 견해다 . ( 상생의땅 가야산  깊은솔발행 참조)

  * 포천 (布川) 이라함은 맑디 맑은 물이 흐르는 하얀 바위가 
흡사 베의 빛깔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 되었다고 함.

 

     포천 구곡가(布川九曲歌)

 

   가야산 한구비 신선이 사는곳

   산절로 그윽하고 물절로 맑은곳

   속세의 나그네 발길 닿지 않은곳

   학타고 피리 불며 달밤에 노닐던곳

 

포천구곡가는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지은 구곡가로
응와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경상도 성주 출신이며

1809(순조 9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1812년 권지 승무원 정자에임명

1815년 부정자.이듬해 저작을 거쳐 봉상시 직장겸 승무원 박사에임명

1818년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예부감찰.예조.형조. 좌랑이되고 이듬해 지평이 되었다.

그해말 이조정랑에 임명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836년 정언겸 실록 편수관을 소(蔬)를 올려 사직하고

1839년 장명을 거쳐 군자감 정이되어 척사통문을 지어 경상도 각 향교와 서원에 발송

1840년 강릉부사. 이듬해 제주목사

1843년 용양위 부호군 형조참의

1844년 승문원 우승지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편수관임명.우승부지.좌승부지역임.

1852년 대사간에 임명 이듬해 좌승지겸 상의원 부제조를 거쳐 경연 참찬관.

1851년 까지 대사간이 되었으며 용양위 부호군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거쳐 병조참판

1864년 호군으로 향약과 삭강(朔襁)을 실시 하기로 주장하다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이 오가작통(五家作統)의

구식(舊式)과 더불어 거듭 밝혀 8도(道)와
4도(都)에 시행하는것이 어떻겠냐고

대왕대비에게 묻자 우선 이원조의 고향인 성주에 실시하여
실효가 있으면 차차 시행토록 하였다

이해 다시 대사간 병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한성부판윤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특지로발탁

이어 용양위 대호군겸 지의금부사지 춘추관사가 되고 기소에들어
고종3년(1866)공조판서에 임명 1869년 정헌대부에 올라
1871년 숭정대부 용양위 상호군겸

판의금부사에 임명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음
남인(南人)으로 청환(淸宦)을 두루 거쳤으나 산수에 뜻을 두어

성주 옥계계곡 포천구곡 원림을 경영 하면서 포천구곡가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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