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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유적지를 찿아(천주교)

복자성당(대구.동구)

by 애지리 2023. 6. 20.

대구 도심지에 위치한 이곳 복자 성당은 입구에 들어서면 세 분의 복자가 묻혀 계신 곳이다.

병인박해(1866년) 100주년을 기념하여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헌 양하기 위해 1964년 주교회의에서

각 교구별로 기념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의하면서 대구대교구 순교자 기념성당으로 출발을 하게 된다.

1970년 1월1일에 봉헌된 복자성당은 교구민의 헌금으로 세워졌으며 베네딕도 수도회의 독일인 알빈 신부가

설계를 하며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타고 온 라파엘호를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1987년 관할 구역명에 따라 신천성당으로 변경되었다가 1999년 본당 설립 당시 정신을 살려 

복자성당으로 다시 변경하였다.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송라로 22 (신천3동 850-3)

복자성당 

* 대형십자가 아래 세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이양등.(베드로).김종륜(루카).허인백(야고보)

* 이 세 분의 복자는 병인박해(1866) 때 경남 언양 죽령리 공소에서 박해를 피해 더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가족과 함께 경북 경주 산내면 단석산 소태골의 한 범굴에 피신 신앙생활을 하다 1868년 경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경주 감영에서 옥중에 갇혔다가 울산 병영으로 이송되어 울산 장대벌에서 1868년 9월 14일(음 7.28)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다.

  세 분의 유해는 허인백(야고보) 1821~1868 부인 박조예가 관헌의 눈을 피해 동천강 둑에 가매장하였다가 

  이후 경주 진목정 도매산에 묘소를 마련하여 이장을 하게 된다.

  그 후에 대구에 살던 허 야고보의 손자 (명선)는 김 루카의 손자(병옥)와 협의 후 교회의 재가를 받아 1932년

  5월 29일 대구 감천리 묘지로 이장하였고  다시 1962년 10월 25일 감천리 묘지의 성모상 앞으로 옮겼다가 

  병인 순교자 기념 성당인 복자 성당으로 1973년 10월 19일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다.

* 군문효수형(軍門枭首刑)이란 - 죄인의 목을 베어 병영이나 수영이 있는 곳에서 형을 집행하여 근문(軍門)에

  목을 달아놓는 형벌로 집행 과정은 군대가 형장에서 시위를 하고 사형수 얼굴에 회 칠을 하여 

  양팔을 등 뒤로 잡아묶고 어깨 밑으로 긴 막대기를 끼워 형장 주위를 끌고 다니다가 사형수의 죄상 판결문 낭독후

  양쪽 귀에 화살촉을 위로 가게 꿰고 사형수 웃옷을 벗긴 후 목을 베어 군문에 높이 매달아 놓는 형벌

  김대건 신부. 앵베르 신부.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 등이 같은 방법의 형을 받았다.

세 분의 순교자비

종탑

성전 안

* 제대와 감실에는 성인 네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엥베르 범주교. 모방 나신부. 샤스탕 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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