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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海美邑城) 충남.서산

애지리 2024. 8. 13. 10:31

2024.8.3

이곳 해미 읍성은 조선시대 1417년(태종 17)부터 1421년(세종 3)까지 쌓아

완공한 성으로 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 성으로

왜구에 효과적으로 막기위한 성벽으로 둘레는 1,500m. 높이 5m로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어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1652년(효종 3)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 기능으로 있다 청주로 옮겨 가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는 내포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순교지였으며

읍성 안에는 동헌. 관아. 객사. 등이 있으며 1579년(선조 12) 에는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고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이곳 해미에서 유배 생활 중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1910년 읍성 철거령에 따라 모든 시설이 철거가 되어

1973년 다시 정비하여 1997년 발굴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이 되었다.

2014년 8월 17일 에는 제266대 로마 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제6회 아세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참가자 23개국 6,000명) 하였다.

 

해미읍성 진남문(남문)

진남문 안쪽 모습

* 문루 받침돌 중앙에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亥造)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 하는데 1491년(선종22) 에 진남문이

  중수(重修)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읍성 성벽

사적 표지석 (사적 116호)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념 비 (2014.8.17)

회화나무 (호야나무)

읍성 옥사(獄舍)

*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 를 토대로 복원했으며 1790년부터 100 여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 곳에 푸옥 하였다.

호서 좌영 (湖西左營)

동헌(東軒)

청허정 (淸虛亭)

호서좌영 루각 앞 느티나무 수령 200년 보호수

해미읍성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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