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유적지를 찿아(천주교)

해미순교성지(충남.서산)

애지리 2024. 8. 12. 22:35

2024.8.3

천주교 해미순교성지는 1963년 1월 21일 자로 사적 116호로 지정된 곳으로 

2014년 가톨릭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가 이곳에서 개최 되면서 로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문하면서 주목을 받고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곳 성지는 1866년(병인박해) 부터 1872년까지 6년 동안 붙잡힌 천주교 신자가 

약 1,000 여명 정도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조선 초기 충청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곳으로 1651년 청주로 옮겨가게 된다.

그 당시 해미읍성에서 고문을 당하고 마지막 처형 당하는 곳이 해미읍성 서문 밖과

해미천변(여숫골)이었다고 한다. 해미읍성에서 해미성지(여숫골) 까지는 약 1.8km 거리.

1935년도 서산성당 범바로(p Barraux) 신부 순교자 유해가 발굴되며 집단 학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1839년(기해박해) 때는 8명이 순교를 하게 되는데 이때 김대건 신부 증조부(김진후. 비오)도

포함되었으며 1866년(병인박해) 때는 132명이 순교를 하였는데 성명 미상이 47명이나 

되었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인언민 (마르티노)와 이보현(프란치스코)이

1800년 1월 9일 장살형으로 순교를 하였다.

이곳 해미성지는 1985년 4월 해미공소가 성당으로 승격되었고

6월에는 해미순교선열 현양회가 발족이 된다.

1998년도에는 부지 23,100㎡ (약 7,000평)를 확보.

2000년 8월 성지건립 기공식을 가지고 2003년 6월 17일 자로 성지 건립이 완공되었다.

2004년 8월 16일에 해미순교자 3명 시복식이 이루어졌고

2014년 8월 17일에는 순교자 3위 기념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주소: 충남 서산시 해미면 성지 1로 13(읍내리 274-10)

해미순교성지 표지석

생명의 책

*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주교님들과 만남에서 말씀하신 사랑의 메시지를

  남긴 조형물로 책장 가운데 나무는 해미읍성 안에 있는 호야나무를 상징한다고 한다.

생명의 나무

*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기념 조형물로 사랑 과 평화의 메시지를 나무에 새겼으며

  기단석은 서산시의 지형을 형상화시켰다고 한다.

해미순교자국제성지 입구

순교자 기념관

여숫골 표지석

* 여숫골이란 지명은 "예수마리아" 란 소리가 여수머리로 들려 여숫골로 유래되었음

진둠벙(죄인둠병)

* 끌려오던 천주교 신자들의 몸에 돌을 매달아 수장했던 연못으로 외인들은 

  천주학 죄인들이 빠져죽은 둠벙이라 하여 죄인 둠벙으로 불렀다고 한다.

* 진둠벙에서 유해 발견 당시 이 뼈들은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되었다 하는데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로 발견 장소인 진둠벙교 

다리밑과 기념관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야외 노천성당

해미순교탑 (높이 16m )

무명순교자 묘

순교기념관 외벽 순교조각상

해미순교성인 3위 복자상

순교자 3위 기념비

자리개 돌

* 자리개돌 처형 방법은 순교자를 서너 명의 군졸들이 들어 올려 자리개질(태질) 하여

  머리와 가슴을 으스러지게 하여 죽이는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해미대성당(면적:3234㎡ 지상 4층 700석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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