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겨울은
책 속의 사진에서만 보았던 창덕궁 후원을 애지리의 셋 째인 리가 예약하여
갑작스럽게 한파가 몰아친 황량한 엄동에 답사를 하게되어 추위 때문에
아무래도 좀더 여유를 가진 답사가 되지 못해 빠진 지역은 다음을 기약해본다.
창덕궁 후원은 사적 122호로 면적이 10만 3천 평 정도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다.
조선 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 조원(造苑)으로 우리나라 조원 문화(造苑文化)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정원으로 후원(後苑) 또는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불렀으며 비원(秘苑) 은 일제 때 사용한 용어라 한다.
이곳에는 인공적인 관상수는 심지 않았고 나무 전지(前枝)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75년 조사 기록에 의하면 수령 300년 이상 된 나무가 느티나무 37그루. 은행 2그루.
회화나무 2그루. 주목 10그루. 측백 2그루. 주엽나무 1그루. 그리고 천연기념물이 4그루
규장각(奎章閣)과 주합루(宙合樓) 어수문(魚水門)
이 건물은 1777년(정조 1)에 정면 5칸 측면 4칸 2층으로 중층 누각의 경우는
아래층을 각(閣). 위층을 루(樓)라 하기에 규장각. 주합루라 하며
규장각은 임금의 어제. 어필 등을 보관하는 서고의 용도로 규장각의 규(奎)는 28수 별자리
중 문운(文運)을 관장하는 별이고 장(章)은 문장 또는 밝다는 뜻으로 규장은 임금의 글을
지칭한다고 한다.
주합루(宙合樓)는 우주와 합일한다는 뜻으로 주합루의 현판은 정조 임금의 글씨며
어수문(魚水門)의 어수는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국왕과 신하를 뜻한다고 한다.
(참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후원 들머리 입구
부용정(芙蓉亭)
부용지(芙蓉池). 의 부용정과 사 정기 비(四井紀碑)
어수문(魚水門) 안쪽에 주합루 현판이 보인다.
사정기 비각(四井紀碑閣)
부용지 우물 (2008년 발견)
* 이곳 부용지 주변에는 4개의 샘이 있었다는 기록(사 정기 비.四井紀碑)에 의하면
마니정(摩尼井). 파리 정(파璃井). 유리 정(琉璃井). 옥정(玉 井) 이란 샘이 있었는데 현재는
1 개의 샘만 존재하고 있다.
부용정(芙蓉亭)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부용정을 한옥으로 지을 수 있는 화려함의 최대치가 구사된 건물이라
표현하고 있다. 1792년(정조 16)에 지어진 건물로 부용정의 부용은 연꽃"부"자에 연꽃"용"자로
연꽃으로 연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한다.
열 십자형을 기본으로 4면이 팔작지붕의 멋스럽고 아름다운 집이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찬미와 찬사를 글과 노래와 시로 나타 내었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사정 비각(四井碑閣)
영화당(暎花堂)
* 영화당은 궁궐의 행사를 치르던 공간으로 특히 영화당 앞
춘당대에서는 활쏘기. 말달리기.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고 한다.
이곳 영화당에서 임금은 활쏘기를 관람하고 과거 급제자를 맞이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영화당 안쪽은 금전 지역이어서 과거 급제자라도 영화당 앞 뜰까지만 갈 수
있었다고 하며 영화당의 처음 건물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왕조실록 1692년(숙종 18)에 영화당에 대한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화당이란 현판 글씨는 영조 임금의 글씨라 알려져 있고 원래 이곳에는
무술을 열람하는 정자라는 열무정(閱武亭)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영화당이라 추정하며 전통을 이어 갔다고 한다.
불로문(不老門)
* 불로문은 특이하게 디귿자 아치형 돌문으로 화강석 돌판 돌을 디귿자로
오려 세운 문이다. 애련정이 바로 가까이 있으며 돌문 위 머리에는 음각으로 한자
전서체 글씨로 중앙에 불로문이라 새겨 놓았다.
본래는 불로문 기둥 안쪽에 쇠못 박은 흔적이 있어 다른 문이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불로문 안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연못이 애련지다..
애련정(愛蓮亭)
* 사각형의 연못 애련지에 세워놓은 정자로 1692년(숙종 18)에 세워진 건물이다.
애련정이란 이름은 송나라 주돈이(周敦이)의 유명한 애련설에서 따 왔다고 한다.
애련정은 돌기둥 2 개가 연못에 깊이 내려져 있고 단청이 화려하다.
또한 자태가 당당하며 낙양각이 화려하고 네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애련정 정자를 세운 뜻인 숙종의 애련정 기문이 있으며
애련지 석축에 새겨놓은 태액(太液)이라는 전서체로 새겨진 글씨의 뜻은
"큰 물"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애련지가 태액지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