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충청도

성삼문선생 유허지.유허비(충남.홍성)

애지리 2023. 5. 18. 22:36

2023.4.16

매화의 지조와 대나무의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 알려진 사육신의 한 분이었던 

성삼문 선생(1418~1456)의 유허지가 최영장군 사당 바로 이웃 노은리에 있다는 이정표를 따라

유허지를 찿았다. 최영장군과 성삼문 선생 출생지가 두 분 다 이곳 홍북면 노은리가 되는 셈이다.

이곳은 성삼문 선생 외조부인 박담 고택이 있던 곳으로 성삼문 선생은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삼문 선생을 세종(1418~1450) 때 집현전 학자였고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자이며 

단종 폐위 사건 때 굳은 절개로서 목숨을 잃어버린 사육신의 한 분 정도로만 알고 있다.

유허비의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진상이 썼다고 한다.

1691년(숙종 18)에 신원과 관직이 복구되며 1758년(영조 34)에 이조판서롤 추증되며 충문(忠文)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호는 매죽헌(梅竹軒)으로 절의가(絶義歌)와 절명시(絶命詩) 가 유명하다.

주소: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104번지

절의가(絶義歌)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랑장송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절명시(絶命詩)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둥둥둥 북소리 울려 내 목숨 재촉한다.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머리 돌려 바라보니 해가 지려 하누나

黃天無一店(황천무일점) 저승길에는 주막집 하나 없다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오늘밤은 내 어느 집에서 묵어갈까.

 

 

성삼문 선생 유허비 (문화재자료 제164호)

유허지 표지석  (기념물제 5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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