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白馬江)과 고란사(皐蘭寺)
부여 부여읍 구교리 백마강변에는 부소산 고란사를 오르내리는 황포돗대 선착장의
이름이 구드래나루터로 이곳은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선착장에 내리면 부소산을 관광 할 수 있습니다.
* 백마강은 일반적으로 금강변 부여읍(扶餘邑)정동리의 앞 범바위(虎岩)에서
부여읍 현북리 파진산 모퉁이까지 약16km구간을 백마강이라 칭함.
* 백마강 명칭유래는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하여 용을 낚았던 바위를
조룡대라 하고 강의 이름도 사하(泗河)에서 백마강(白馬江)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백제 말기보다 160년 앞선 무녕왕 시대의 기록에 이미 금강을 백강(白江)으로 표기했던
사실이있고 역사적으로 말을 크다는 뜻으로 써온것을 감안할때 백마강은 백제에서
가장 큰강 이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야 함이 타당 하다고 합니다. (출처: 백과사전)
구드래 나루는 백제 사비성의 관문역활 백제의 무역항으로 이곳을 구드래.구다라
굿들개.구다라.구들 설 이 있는데
구다라설-일본 서기에 나오는 구다라 로 그 뜻이 대국 섬기는 나라 백제를 뜻함을 의미
굿들개설-굿을 하며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모시는 장소라는 의미
나루터 입구 유래비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하여 옛날 백제왕이 강 건너에 있었다는 왕흥사에
가기전 잠시 머물며 예불을 드리던 바위가 있었는데 왕이 도착하면 바위가 구들처럼
스스로 따뜻해져 "구들" "구드래"가 되었다고 하네요
낙화암 바위위에는 백화정 이라는 조그만 정자가 있으며 삼국유사에 인용된 백제고기(百濟古記)
에 의하면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는 강물에 임하는데 모든 궁여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것을 알고 차라리 죽을 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고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빠져 죽었음으로 이 바위를 타사암(陀死巖)이라 부르다 훗날 낙화암으로 바뀜
고란사(皐蘭寺)는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扶蘇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몇가지 설에 의하면 하나는 백제때 왕들이 노닐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설과
또하나는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라는 설이 있는데
백제의 멸망과 함계 소실된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 하기위하여
중창하여 고란사(高蘭寺)라 하다가 그뒤 벼랑에 고란초가 자생하여 고란사(皐蘭寺)로 불려짐.
고란사는 충남 문화재 자료 98호로 (84.5.17) 지정 되었고
1028년(현종19)중창
1629년(인조7)1797년(정조21)중수
1900년 숭각사(崇角寺)를 옮겨와 중건
현존 당우는 1931년에 지은 것으로 1959년 보수하여 정면7칸 측면5칸(출처: 백과사전)
고란초는 고란초과에 속하는 상록다년초로 백마강가의 고란사 뒤의 절벽에서
자란다고 고란초라는 이름이 생겼는데 고란초는 전국 강가의 절벽이나 바닷가 숲속에서도 자람.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釣龍坮)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