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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 다리미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고 다탄 다음에 숯을 만들어 그 숯을 다리미에 담아 숯의 열기로 다리미를 달구어 구겨진 옷이나 광목등 옷감 천을 다리는 도구로 주로 아낙들의 주된 일과 였었지요. 열이 식으면 부채로 뒷 꽁무니쪽 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다시 열기를 높여 옷을 다리던 어머님들의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잘 안다려질땐 물 한모금 입에물어 푸~우 하고 뿜어주곤 했었지요. 그리고나서 연탄문화가 시작되며 연탄불에 달구어 사용하던 다리미가 있다가 전기문명이 이루어지며 전기 코드만 꽂으면 온도도.수분도.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전기다리미에 다 밀려 나 버렸습니다. 다리미는 17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 하였으며 19세기부터 숯다리미가 영국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미국에서는 1860년부터 사용 되었다고 합니다. 2011. 1. 22.
할미꽃 할미꽃은 꽃피고 난뒤 씨에 붙어있는 흰털이 노파의 머리카락을 닮아 할미꽃 이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 하는데 주로 무덤가 양지쪽에서 꽃줄기에 꽃봉오리를 매단채 꽃이 피면 고개를 숙이지요. 할미꽃은 여러해살이 풀 로 미나리아재비과로 숙근초에 속하며 꽃은 4월에서 5월에 걸쳐 봄철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인 야생화로 독성을 가진 식물로 뿌리는 이질.설사멈춤. 신경통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할미꽃 종류로는 가는할미꽃.분홍할미꽃. 산할미꽃이 있답니다. 이른봄 하얀털을 뒤집어쓰고 봄언덕 양지바른 곳에서 봄소식을 가장먼저 알려주고 고향에 향수를 그리워 하게 만들어 주는 꽃으로 멀리 시집가 사는 손녀 집을 가다가 허기와 추위로 얼어 죽은 할머니의 넋으로 무덤가에 피어 났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우리 꽃입니다. 이른봄.. 2011. 1. 22.
화 로(火 爐) 온돌방 안에 화로불을 피워놓고 가족모두 둘러않아 도란 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던 그때 그시절이 있었지요. 지금같이 눈내리는 추운날씨에는 우리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화로불 피워 곰방 담배대에 불도 붙이고 어린 손자 손녀 군밤도 구워주고 군 고구마도 구워주던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이제는 화로는 자취를 감추고 전기 스토브나 석유난로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긴수염 쓰다듬으며 화로불 다독거리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화로에 인두를 꽂아 두었다가 한복동정 깃을 다리고 옷주름을 펴시던 할머니가 생각 납니다. 달걀 껍질에 쌀을 반쯤 채우고 물을부어 화로불에 올려놓으면 달걀밥이 되었던 정감이 넘쳤던 추억의 화롯불이 함박눈이 내릴때면 더욱더 그리워 집니다.... 2011. 1. 22.
돈재 이석문(李碩文)신도비(성주.월항) 성주.월항.대산리 한개부락 북비고택 맞은편에 는 돈재 이 석문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자는 사실.호는 돈재.본관은 성산. 월봉정현의 후손으로 이신(李紳)의 아들로 한개 에서 출생 하였으며 1739년(영조15년),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762년(영조38년),휘령전(徽寧殿)에 왕을 호종하여 간신(諫臣)을 불러들이고 세손(世孫:뒤의 정조임금)을 업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구명을 꾀하다가 벼슬에서 쫓겨나 고향 집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대문을 내고 대궐을 향하여 매일 새벽 재배(再拜)하니 사람들은 그를 북비공(北扉公)이라 불렀다고하며 정조(正祖)때에 문숙공 채 제공(文肅公 蔡濟恭)으로 인하여 그 손자 규진(奎鎭)이 왕을 입시하니 "너의 조부의 세운 공이 참으로 갸륵하다'고 하고 돌아간 후 병조참판.. 2011. 1. 19.
성주한개마을 한주종택(寒洲宗宅)성주.월항 경북.성주군.월항면.대산리 408번지에 소재한 한주종택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건물은 조선 영조(英祖)43년(1767)때 이민검 이 건립하고 고종3년 (1866)성리학자 이진상(李震相)이 새로 고쳐지어 지금의 집은 그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집의 구조는 한주정사(寒洲程舍) 정자가 있는 구역과 안채.사랑채로 이루어져 대문은 동향이며 정자와 사잇담을 두고 작은 협문과 일각문을 내어 출입을 하고있다. 한주정사 정자 한주종택 사랑채 한주종택 안채 한주(寒洲)이 진상(1818~1885)은 성주.월항면 한개마을 출신으로 자는 여뢰(汝雷),호는 한주(寒洲),본관은 성산(星山)으로 월봉 정현(月峰 廷賢)의 후손으로 이 원호(李 源祜)의 아들로 숙부인 응화 이원조 에게 수학하여 .. 2011. 1. 19.
성주참외 상징물 성주참외의 공식적인 홍보물 그리고 조형물들 입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60% 이상을 생산하고 품질과 맛에서 차별화가 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성주참외는 전국방방 곡곡에 이미 참외하면 성주라는 등식이 성립 되듯이 유명해 졌는거 같습니다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서 팔려지고 있는 모든 참외는 성주 참외니까요. 강화도 섬에도 강원도 첩첩 산골에도 시골 구멍가게 에도 길가 리어카 판매상도 다른곳에서 생산되는 나머지 40%까지도 전부다 성주참외로 둔갑되어 팔려지고 있습니다.이젠 성주참외 홍보가아닌 둔갑되어 팔려지는 짝퉁 참외유통을 막는일이 숙제가 아닐까요? 선남면과 성주읍 경계지점에 세워진 참돌이와 참순이 입니다. 참외 모형 도로변 간이 주차장 입니다. 성주군 농업기술쎈터 옆에 세워진 참외 전시관의 참외 모형 입니다... 2011. 1. 8.
성주한개마을 하회댁(河回宅.성주.월항) 아래 건물 하회댁(河回宅)은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1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 제 326호로 지정되어 있고 진주목사 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터를 잡은 한개마을 중심에 위치한 조선후기 양반 주택이다 현 거주자의 조부가 구입하여 그 자손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정확한 건립 연대나 내력은 알수 없으나 1630년대의 건물로 추정 하고 있으며 택호(宅號)는 소유자의 부인이 안동 하회(河回)에서 시집온데서 연유 되었으며 이건물은 영취산을 배경으로 백천(白川)과 이천(伊川)을 바라보고 있으며 안채.사랑채.고방채.중문채.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정침이 흙담으로 분할되어 남녀 공간 구분이 확실하며 그 사이에 협문을 내어 내외를 연결 시키고 있다. 한개 마을의 다른 가옥처럼 남부지역 반가의 .. 2011. 1. 6.
성주한개마을 북비고택(北扉古宅.성주.월항) 경북 민속자료 제44호로 지정된 북비고택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안채.사랑채.안사랑채.사당.대문채.북비.북비채 로 이루어진 이가옥은 조선초기 성산 이씨가 한개에 입향할 당시 종택이던 대초당(大草堂)을 경종(景宗)1년(1721)에 처사(處士) 이이신 이 매입하여 오늘날의 터전을 잡은 가옥이다.영조(英祖)때의 무신(武臣)으로 병조참판에 증직된 그의아들 이석문(李碩文)이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북쪽으로 사립문을 낸 뒤부터 북비댁(北扉宅)으로 불렸다. 그뒤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사헌부 장령(章令)을 지낸 이석문의 손자 이규진(李奎鎭)이 순조(純祖)21년(1821) 에 정침을 중건하고 종일품 숭정대부(崇政大夫)로 공조판서를 지낸 그의아들 정헌공(定憲公)이.. 2011. 1. 6.
한개마을 흙돌담길(성주.월항)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부락은 고풍스런 한옥과 아름다운 돌담길이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 자료로 지정되었고 돌담길은 아름다운 성주팔경에 선정되었습니다.아래사진은 한개마을 흙돌담길 풍경입니다. 2011. 1. 5.
진달래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과는 왠지 친근함을 느끼는 꽃이지요. 낙엽성 키 작은 나무로서 이른봄 화사한 분홍빛 꽃을 피우는데 간혹 흰색 꽃이 피는 수종도 있는데 잎에 털이나는 털 진달래와 잎이 넓은 왕진달래 상록성인 산진달래가 있습니다. 꽃잎을 생으로 먹을수 있는 꽃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꽃이 진달래인데 참꽃 이라고도 많이 부르고 진달래보다 늦게 꽃이피는 철쭉은 "개꽃"이라 부르지요 진달래도 철쭉과로 분류가되며 진달래꽃은 꽃술을 빼고 꽃잎만 먹는데 철쭉(개꽃)은 먹을수가 없는 꽃이지요. 봄철에 산에서 뛰놀거나 진달래 꽃을 꺽던 어린이들이 꽃잎을 따먹고 입술은 꽃잎으로 물이들곤 했던시절 어른들도 산길을 오가다가 진달래꽃 한두 잎 따먹던 추억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너무.. 2011. 1. 5.
감응사.感應寺(성주.월항) 감응사 사찰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주 선남에서 월항간 도로에서 2km 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감응사 사찰 주차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부터는 도보로 걸어서 약0.4km 가면 감응사가 나타 납니다. 이 절은 처음에는 감응암(感應庵)이란 암자 였으며 감응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 보조국사 체징이 왕명에 의하여 창건한 절로서 1740년 (영조16년) 에 중수 1780년에 (정조4년) 에 또 중수 1921년에 다시 중수 현재 대웅전(정면3칸).칠성각.봉래당.건물이 있다. 왕자의 눈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는 옥류정이 절뒤 절벽에 있다. 감응사 대웅전 감응사입구 진입로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에서 바라본 감응사 전경 2011. 1. 4.
가야산 칠불봉 능선비경 서성재에서 칠불봉 그리고 상왕봉 주변 풍경 입니다. 칠불봉 건너편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칠불봉 입니다. 칠불봉에서 바라본 상왕봉 전경 입니다. 만물상 상아덤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능선 입니다. 2011.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