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가실성당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614.615 번지에 소재하고
지방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 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성당과 구 사제관은 1923년 프랑스인 프와넬(박도행)신부가 설계하고
투르뇌(여동선)신부가 건립 하였고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건물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근대 건축사와 교회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성당은 건물 건평이 217평방미터.지상1층 지하1층 붉은색및 회색 벽돌조 웅장한 선
로마네스크식 건축으로 정면 중앙부에 종탑을 형태로 내부의 천정은 목재로 틀을 만들고
회반죽을 바른 원동형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나 최근에 온돌마루를 설치 하였습니다.
성당 뒤쪽 구 사제관 건평93평방미터의 단층 건물로 평면은 장방형이며
중앙의 현관 홀을 중심으로 계단실.교리실.창고.집무실.침실을 배치하고
현관 홀에서 통하는 지하에는 포도주 저장실이 있습니다.
가실(佳室)이란 지명은 낙산(洛山) 본동(本洞)으로서 옛날에 큰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옆에 갈대가 많이 나 있었다고 하여 노호동(蘆湖洞)이라고도 부릅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천주교회.
[개설]
1895년 초대 본당 신부는 파리외방선교회의 빠이아스 가밀로(C. Pailhasse)[한국명 하경조] 신부이다. 가밀로 신부는 한국에 입국, 칠곡군 지천면 신나무골 근처에 천주교회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던 중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서 쉽게 대구, 안동, 부산 방면으로 오고 갈수 있는 장소인 왜관읍 낙산리에 세운 천주교 조선교구로서는 11번째, 대구교구에서는 계산성당 다음으로 가실성당을 설립하였다.
[설립목적]
왜관읍 남부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선교 활동을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가실성당이 있는 낙산리 일대는 왜관의 낙동강 가에 있는 작은 마을로 옛날 조선시대에는 가실 나루터와 강창 나루터가 있는 해상 교통이 빈번했던 마을이다. 이곳에 처음으로 천주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784년 한국 천주교 창립 시에 이곳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창령성씨 집안의 성섭이라는 학자가 몇 번 과거 시험에 낙방한 후 과거를 포기하고 글공부에만 전념하다가 만년에는 천주교 진리를 받아들여 그 집안에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성섭은 1788년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고 1791년 신해박해 혹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남은 후손 일부가 성주 홈실로 피난을 가고, 다른 집안사람들은 가실에 남아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성섭의 증손자인 성순교가 열심히 신앙을 믿고 실천하였는데 그는 1860년 경신박해 때 상주에서 순교하였다고 가문에서 전한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 이후 프랑스 선교사들이 한층 자유롭게 포교 활동을 할 때 1894년에 조선에 나온 빠이아스 신부가 처음 칠곡 신나무골에 도착하여 동학혁명이 끝난 후 신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곳 가실에 자리를 잡고 1895년 9월에 정식으로 가실성당이 설립되었다.
1895년 가실성당 설립 당시에는 본당 관할에 칠곡, 성주, 김천, 선산, 상주, 문경, 예천, 군위, 영천 지방 31개 공소가 있었다. 본당 신부가 매 공소에 매년 적어도 말을 타거나 도보로 2회 이상 순회하면서 사목을 했다. 현재의 가실성당 건물은 1922~1923년에 지어졌다. 건축양식은 신(新)고딕 양식을 띤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설계자는 프랑스인 박도행(V. L. Poisnel) 신부이다. 박도행 신부는 1896년부터 1925년까지 30년간 대구 계산성당과 왜관성당을 비롯하여 한국 천주교의 많은 교회 건축물을 설계했다.
가실성당의 공사는 중국 기술자들이 붉은 벽돌을 현장에서 구워서 사용하였고, 당시 본당 신부는 프랑스인 여동선(Victor Louis Tourneux)[1911~1944] 신부가 망치로 벽돌을 한 장씩 두드리면서 일일이 다 확인을 하며 세웠다고 한다. 가실성당의 주보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이다. 각실성당에 있는 성모상은 건축할 때 프랑스에서 수입했고, 액자는 중국에서 들여왔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낙산마을에서 전투가 심하여 파괴되었지만, 가실성당 건물만은 인민군의 병원으로 사용한 관계로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전례에 따라 1964년에 제대 쪽의 구조를 많이 바꾸었고, 제의방을 만들기 위해서 약간의 확장 공사를 하였다.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해서 동양화가 손석희가 가실성당의 14처를, 독일 화가가 감실 및 색 유리화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또한 가실성당은 2004년에 영화 신부수업(감독: 허인무, 주연: 권상우, 하지원, 권인권)의 찰영지가 되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2일에는 1956년부터 불리워 오던 ‘낙산성당’이라는 이름을 대신하여 원래의 이름인 가실성당을 되찾았다. 가실(佳室)은 낙산의 옛 이름이고, 아름다운 집을 뜻하며 관계되는 집은 바로 성순교 가문의 집이다.
[주요사업과 업무]
아름다운 성당으로 문화 유적이고, 순례의 집으로 기도하기에 참 좋은 곳이며 많은 신자들이 언제나 단체로 피정(避靜)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고, 연중 순례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지역의 사회봉사 활동 등이 있다.
[활동사항]
관내 8구역 8개 반으로 편성된 평신도 단체는 평신도 사도회 산하 성모회, 반장회, 요셉회, 베드로회, 청년회, 성가정회, 안나회, 복사회, 연령회, 주일학교 교사회, 학생회, 제대회 및 레지오 마리애이고 6개, 쁘리시디움을 통해 신자들이 신앙생활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현황]
2009년 2000년도에 부임한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현익현[바로톨로메오] 신부가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그동안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2011년도에는 현익현[바로톨로메오] 신부가 사임하고, 황동환[이사악] 신부가 부임하였다. 가실성당의 신자 수는 과거에 1,000여명이 넘었는데 관할 지역이 좁아지고 또 산업화·도시화로 이제 500여 명으로 줄었다. 현재 관할구역은 왜관읍 낙산 1-3리, 금남 1-2리, 금산 1-2리 등이고, 성당에 속한 하산공소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 1-2리, 본촌 1-2리 및 감문 1-2리를 관할하고 있다.
가실성당과 사제관은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로 지정되었으며, 대형 십자가(나무 조각)는 1964년에 안나상 대신 성당 안 제대에 모시고 있다. '엠마오' 감실은 앞면은 칠보 작품이고, 주제는 '엠마오' 또는 '부활 감실'이다. 주보성인 안나는 1924년 이전에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된 한국의 유일한 안나상이라고 한다. 순교자의 기념비는 약 200년 전 실학자 성섭의 가문을 기리고, 그의 증손자 성순교가 상주에서 순교함을 기린 기념비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실성당 건물이 잘 보존되어 신자뿐만 아니라 탐방객들에게도 개방되어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도로변 입구 가실성당 표지석
진입로 성당 올라 가는길
사제관
야외 제대와 성모상
성 모 상
야외제대
성당전경
느티나무와 잔디광장
성 가정상
성당 앞 전경
성당 안 제대
성당 안
스테인 글라스 성화
14처
옛 우물
우물 천장에 매달린 두레박 도르레
아직 사용 하고있는 옛 창고
성당 뒷 모습
외부로 출입 할 수 있는 사잇문
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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