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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자연과 문화를 찿아(국내)/경상도

농산정(籠山亭)가야산(경남.합천)

by 애지리 2015. 5. 28.

 

 신라의 대표적인 유교학자 고운.최치원(孤雲.崔致遠)이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으로 조선시대 유림에서 최치원을

추모하여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이곳 가야산 홍류계곡에 정자를 세워 농산정(籠山亭)이라

이름 지웠는데 이는 고운.최치원의 자작시 "이는 세상의 시비가 귀에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다 막았네" 라는 시 구절에서 인용 했다고 합니다.

농산정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가야산로 531 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래엔 가야산 소리길 구간 매표소 지나자마자 계곡을 건널수있는 다리를놓아

농산정으로 건너 갈수가 있습니다.

1990년 1월 16일 자로 경남 문화재 자료 172호로 지정 . 지금의 건물은 1922년에 해체

1936년에 다시 보수하여 정자는 정면 2칸.측면2칸 규모의 단아한 정방형의 목조 기와집으로

정자 현판에는  김영한(金寧漢)이 쓴 농산정기(農山亭記)와 찬양사(讚揚辭)4 수(首)가 기록.

둔세시를 차운(次韻)한시 8 수(首)가 있으며 시 중에는 점필제 김종직 선생의 차운시도

들어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 시호는 문창(文昌)

경주 사량부(沙梁部)출신. 견일(肩逸)의 아들. 신라 골품제 6두품. 신라 삼최(三崔)중 한사람.

 

경력으론 시독겸한림학사.수병부시랑.지서서감사.부성군태수.아찬.

저서로는 계원필경.법상화상전.사산비명

 

고운 최치원은 경문왕8년(868) 당시 12세때 당나라 유학을 했으며

857년에 태어나 가야산에서 어느날 숲속에 갓과 신발을 남겨둔체 자취를 감춰버려

사망일자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네요.

 

최치원의 발자취는 이곳 가야산 말고도 경남 일대 여러곳에 흔적과 기록이 남아

후세에 전해지고 잇습니다.

함양의 상림.학사루

양산에 임경대.경파대

하동의 쌍게사앞 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환학대.불일폭포.범왕리 푸조나무.세이암.

창원의 월영대.고운대.청룔대.강선대.서원곡

거창.가조 고견사 은행나무.

경북.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 원래 이 사찰은 고운사(高雲寺) 였는데

여사대사와 함계 가운루와 우화루를 건축 그 이후부터 고운 최치원의 호를따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산의 해운대(海雲臺)도 부산 동백섬 일대의 경관에 반하여 자신의 호 해운을 따

지명을 해운대라 붙였다고 합니다.해운대 석각도 동백섬 절벽 한켠에 남아 있으며

이러한 연유로 최치원의 동상과. 시비. 동백섬 언덕.

현재 부산해운대구와 최치원이 벼슬을 하며 토황소격문을 지었던 중국 양저우 시구는

자매결연을 맺어 최치원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자안 벽에 걸려있는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현판

 

 

 

 고운 최치원 선생 돈세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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